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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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 호계서원 |
명칭 | 『松巖集』 |
문화재 지정 표기 | |
저 자 | 權好文 |
소장정보 |
◦『松巖集』, 權好文, 續集권3, 詩, 「次李安仲題廬江書院韻」
이안중이 여강서원에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
현인을 존숭하는 서원을 경영하니 / 經始尊賢處
맑은 거처를 푸른 물이 감쌌네 / 淸幽遶碧流
유궁은 악록서원을 따르고 / 儒宮追嶽麓
정사는 창주정사와 꼭 같네 / 精舍宛滄洲
학문을 논하기에 적합할 뿐 / 正合陳編討
수계하는 일과는 관련 없네 / 非關稧事修
좋구나, 그대 뜻이 원대하여 / 憐君多遠志
피리양추 품고 있는 것이 / 皮裏抱陽秋
◦ 『松巖集』, 權好文, 續集권4, 詩, 「八月十七日參尊道祠享禮登養浩樓次柱上韻」
8월 17일 존도사 향례에 참여하고 양호루에 올라 주련의 시에 차운하다
강산이 붓으로 그린 그림보다 좋은데 / 江山猶勝畫毫裁
모래톱에 바람 불고 대에는 달이 밝네 / 風滿長洲月滿臺
멋진 벗과 좋은 때에 절경을 실컷 보며 / 勝友嘉辰饒絶賞
난간 앞엔 갈매기만 오도록 하였네 / 檻前唯許白鷗來
◦ 『松巖集』, 權好文, 別集, 年譜, 「松巖先生年譜」
六年 神宗萬曆元年 癸酉 先生四十二歲
正月。往易東書院。校李先生文集。仍論廬江書院營建事。
6년 - 명나라 신종 만력 원년 -계유(1573) - 선생 42세 -
정월에 역동서원(易東書院)에 가서 이 선생의 문집을 교정하고 여강서원(廬江書院)을 건립하는 일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七年甲戌 先生四十三歲
往廬江書院。以詩贈李逢原。安道○詩云。一哭先生後。追懷孰築場。門人才思短。家業訓言長。文物朱雲谷。風流顧建康。數城俱會處。應最不堪傷。
7년 갑술(1574) - 선생 43세 -
여강서원에 가서 시를 지어 이봉원(李逢原) 안도(安道) 에게 주었다. - ○시에 이르기를 “선생께서 돌아가신 뒤, 추모하여 누가 축장을 하였나? 문인들의 생각이 짧지만, 가업의 교훈은 장구하리. 문물은 운곡의 주자요, 풍류는 건강의 고헌지라네. 여러 번 묘소에 함께 모인 곳에서, 가장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겠네.[一哭先生後, 追懷孰築場. 門人才思短, 家業訓言長. 文物朱雲谷, 風流顧建康. 數城俱會處, 應最不堪傷.]”라고 하였다. -
撰廬江書院上樑文。
여강서원(廬江書院)의 상량문을 지었다.
八年乙亥 先生四十四歲
正月。往廬江書院。與權定甫 宇 同留論學。有唱酬詩
8년 을해(1575) - 선생 44세 -
정월에 여강서원에 가서 권정보(權定甫) 우(宇) 와 함께 머물며 학문을 논하였다. - 수창한 시가 있다. -
九年丙子 先生四十五歲
9년 병자(1576) - 선생 45세 -
正月。往廬江書院。議定陶山廬江立享儀節。
정월에 여강서원에 가서 도산서원과 여강서원의 입향 의절(儀節)을 의논하고 정하였다.
二月丁丑。奉安李先生位版於廬江書院。行享禮。是日。陶山書院亦奉安位版。行享禮。
○2월 정축일에 이 선생의 위패를 여강서원에 봉안하고 향례를 행하였다. - 이날에 도산서원에서도 위패를 봉안하고 향례를 행하였다. -
八月。謁廬江尊道祠。行享禮。先生時爲洞主。
8월에 여강서원(廬江書院)의 존도사(尊道祠)를 배알하고 향례(享禮)를 행하였다. - 선생은 당시 여강서원의 동주(洞主)였다. -
十四年辛巳。先生五十歲
14년 신사(1581) - 선생 50세 -
春。謁廬江尊道祠。引諸生講學。以詩示諸生曰。吾身日省在曾三。爲學工夫是指南。時雨孔門誰得化。春風程座更難參。餘音恰似瑤琴奏。至訓何徒玉屑談。老學誰知同秉燭。冥行擿埴自多慙。 作警學詩。示門生。有詩
봄에 여강서원(廬江書院) 존도사(尊道祠)를 배알하고 유생들을 이끌어 강학하였다. - 시를 지어 유생들에게 보이기를 “날마다 내 몸을 세 가지로 반성한 것, 공부함에 이것을 지침으로 삼았네. 시우 같은 공자의 문하에서 누가 교화를 입었는가? 춘풍 같은 정자 문하에 다시 참여하기 어렵네. 글 읽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듯하고, 지극한 교훈은 좋은 말씀뿐이랴. 늙은 내가 병촉과 같음을 누가 알랴? 어두운 밤길 헤매니 부끄러움 절로 많네.[吾身日省在曾三, 爲學工夫是指南. 時雨孔門誰得化? 春風程座更難參. 餘音恰似瑤琴奏, 至訓何徒玉屑談. 老學誰知同秉燭? 冥行擿埴自多慙.]”라고 하였다. -
학생들을 경계하는 시를 지어 문하생들에게 보이다. - 시가 있다. -
十六年癸未 先生五十二歲
16년 계미(1583) - 선생 52세 -
春。講諸生于廬江書院。
봄에 여강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강학하였다.
◦ 『松巖集』, 權好文, 別集권1, 詩, 「三月晦日 聞城主送春廬江院樓 獨吟呈一首」
삼월 그믐날에 성주가 여강서원 누에서 봄을 보낸다기에 홀로 시를 지어 한 수 드리다
봄을 좇아 먼 정자를 향했다고 들었는데 / 聞逐東君向遠亭
끝내 한번 작별하고 동행하지 못하네 / 終應一別未同行
멀리 사람 전송함이 참으로 이와 같거늘 / 送人千里眞如是
괜스레 이별의 시름을 저물녘 꾀꼬리에게 부치네 / 謾把離愁屬晩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