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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흥암서원 > 문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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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흥암서원
명칭 『同春堂集』
문화재 지정 표기
저 자 宋浚吉
소장정보

상세정보

宋浚吉, 同春堂集, 續集 卷之十 附錄, 年譜

임오(1702) 숭정 75(숙종28)

상주(尙州) 흥암서원(興巖書院)이 완공되었다.

이로부터 4년 뒤에 유생 등이 상소하여 사액을 청하였다. 이때 서원의 첩설(疊設)을 금하는 명이 내리니, 이상 이명(李相頤命)이 상께 아뢰기를, “현재 조정의 명령이 비록 엄하지만 송준길 같은 대현(大賢)은 이 제한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사액하라고 특명하였다.

계미(1703) 숭정 76(숙종29)

안음(安陰) 성천서원(星川書院)이 준공되었다.

이 서원은 금령(禁令)이 내려진 뒤에 세운 것이므로 기해년(1719, 숙종45) 도신의 사계(査啓) 중에 들었으나, 상은 그대로 두라고 특명하였다.

병신(1716) 숭정 89(숙종42)

11월에 흥암서원(興巖書院)에 어필(御筆)을 걸고, 승지를 보내 치제하였다.

상의 전교의 대략에, “편액을 건 지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다. 병중이라 필획이 더욱 졸렬하지만 반드시 친히 써서 판자에 새겨 내리는 것은 나의 존경하는 마음을 부치기 위함이다. , 임금이 현자를 지성으로 존경하면 이 또한 선비들의 취향을 정하고 사설(邪說)을 종식시킬 수 있으니, 내 뜻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는가.” 하였다. 해조(該曹)가 이 비망기를 가지고 가서 함께 판자에 새겨 서원의 편액과 함께 걸기를 청하였다. 승지가 명을 받들고 가서 치제하였다. 이때 모인 호남과 영남의 유생이 수백 인이었다. 청주 화양에 있는 우암의 서원에도 동시에 함께 은명(恩命)을 내렸다. (중략)

무자(1768) 숭정 142(영조44)

흥암서원(興巖書院)에서 문집을 중간하였다.

처음 문집을 간행할 때 조정의 명이 촉박함으로 인해 어긋난 편차가 많았다. 그러므로 현손(玄孫) 명흠(明欽)이 편차를 다시 정하고 또 경연일기(經筵日記)에서 경의(經義)를 발명(發明)한 것과 치도(治道)에 관계된 것을 뽑아 정리해서 별집 3책과 부록 1책으로 만들었다.

처음 유고(遺稿)의 간행을 명할 때 전교하기를, “문정공 송준길의 문집을 이미 살펴보았다.” 하고, 특별히 교서관(校書館)으로 하여금 오서(誤書)와 낙자(落字)가 있는 곳들을 자세히 대교(對校)하여 간행해 주어 상의 뜻을 표하고 한 질을 정하게 인쇄해 들이라고 분부하였다. (後略)

 

宋浚吉, 同春堂集, 續集 卷十一, 附錄 六, 興巖書院 御筆碑 後記

우리 두 송 선생은 실로 영원토록 존경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어른인데, 불행하게도 반대하는 말들이 시끄럽게 일어나 세상의 도리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슬기로운 지혜를 천성으로 타고나신 우리 성상께서 그 시비를 밝게 보고 드디어 손수 금액(金額)을 써서, 승지를 보내 화양서원(華陽書院)과 흥암서원에 나누어 걸게 하고 이어 비망기를 내려 팔방(八方)에 밝게 보였으니, 우리 전하께서 현자를 존숭하고 사설(邪說)을 물리치신 공이 바로 세 성인과 같다. 이에 사문(斯文)의 시비가 크게 정해지고 선비들의 취향(趣向)이 발라졌으니, 실로 천고에 없던 성대한 일로 우리 동방의 무한한 경사이다. , 아름답도다.

이때 흥암서원의 많은 선비들이 건의하기를, “목판에 글자를 새기고 금을 입힌 것이 영화롭기 그지없으나 이것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하고서, 드디어 서원 뜰에 작은 비석을 세우고 이 글자를 이 비석에 새겨 넣어 영구히 전하기를 도모하였으니, 그 생각이 원대하고 그 정성이 지극하였다. 그러므로 감히 그 시말을 기록하여 비석 하면에 새기게 하였다.

 

宋浚吉, 同春堂集, 續集 卷十一, 附錄 六, 賜祭文, 知製敎 尹秉鼎 作

성악의 정기 받아 / 星嶽毓靈

대현이 탄생하였네 / 大賢有作

아 문정이여 / 猗歟文正

자품이 뛰어나서 / 資稟挺特

온화하고 순수하며 / 溫如純粹

확고하고 강직했네 / 確乎剛直

사계 율곡 정자 주자의 / 溪潭洛閩

연원을 이어받아 / 淵源攸通

오묘한 도 깊이 연구하여 / 湛賾道妙

세상에 드문 유종 되었네 / 間世儒宗

우리 효종께서 / 際我孝后

큰일을 하려 하실 때 / 將大有爲

비로소 초빙에 응하여 / 首膺旌招

조정으로 나아와서 / 麟出鳳儀

뜻을 같이하는 이와 / 爰曁同德

함께 국정을 보좌했네 / 共亮治理

명의 망국을 개탄하여 / 愾念京周

치욕 씻기를 기약하고 / 期欲灑恥

은밀한 계책 협찬하니 / 猷密協贊

예우하고 믿으시어 / 禮隆毗倚

군신의 친밀함이 / 一堂都兪

물고기와 물 같았네 / 歡若魚水

난초 향기 같고 탁주처럼 / 蘭馥醪醇

순박함을 자주 칭찬하셨는데 / 屢蒙天褒

하늘이 돕지 않아 / 皇穹不佑

갑자기 승하하셨네 / 遽抱烏號

말은 증거하기 충분하고 / 辭猶足徵

계책은 수양에 있었기에 / 計在修攘

동방의 이 나라에 / 俾此東偏

윤리 실추되지 않았네 / 不墜彝常

특수한 예우에 감격하여 / 感激殊遇

사왕께 은혜 보답하려고 / 報于嗣辟

세상을 근심하는 일념 / 憂時一念

항상 더욱 간절하여 / 始終冞篤

임종할 때 남긴 소에 / 臨歿遺疏

충심을 토로하였지 / 披露忠赤

앞을 내다보는 밝은 지혜는 / 先見之明

부계처럼 틀리지 않았으니 / 符契不忒

망감 애통해하는 / 亡鑑之慟

전교는 슬펐고 / 敎諭斯惻

선왕의 뜻을 추모하여 / 追先王志

영의정에 추증하셨네 / 元輔貤爵

더구나 숙종께는 / 矧惟肅宗

옛날의 사부였으므로 / 甘盤舊學

어필의 족자 내리시고 / 寶墨紗籠

사액의 은전 내리셨네 / 恩侈院額

영종에 미쳐서도 / 逮夫英廟

사모하는 마음 더욱 깊으시어 / 寓慕冞傾

온화한 바람이고 단비이며 / 和風甘雨

옥의 색깔이고 종의 소리이니 / 玉色金聲

비슷한 기상을 찾는다면 / 髣髴氣像

백정에 비길 만하다 하시며 / 擬於伯程

항상 존경해 심복하시어 / 心常欽服

애통해하는 제문을 지으시고 / 宸製有衋

여론에 따라 / 庸循輿言

문묘에 배향하셨으니 / 聖廡腏食

유도를 존중하는 것은 / 崇儒重道

아조의 전칙이라네 / 我朝典則

내 즉위한 뒤로 / 自予踐阼

밤낮으로 선치를 생각하고 / 寤寐圖治

선정을 그리면서 / 有懷先正

동시대인 못 된 것 한탄하였소 / 恨不同時

멀리 호중을 바라보건대 / 遙望湖中

고택이 아직 남아 있으니 / 尙存故宅

정기가 없어지지 않고서 / 正氣不泯

풍도와 은택 남아 있으리 / 遺風餘澤

관원을 보내어 대신 전을 드리며 / 伻官替奠

내 진심을 토로하노니 / 瀉此肝膈

영령이여 어둡지 않다면 / 英靈不昧

오셔서 흠향하기 바라오 / 庶冀歆格

 

宋浚吉, 同春堂集, 續集 卷十一, 附錄 六, 賜祭文, 後學 成晩徵 作

하늘이 사문을 위해 / 天爲斯文

선생을 내시니 / 乃降先生

금옥 같은 자질에 / 玉潤金精

상운 경성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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