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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흥암서원 > 현판·목판·비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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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흥암서원
명칭 흥암서원비(興巖書院碑)
문화재 지정 표기
구분
형태사항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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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위치
기타

상세정보

御筆

興巖書院

備忘記

予惟琅城有華陽書院商山有

興巖書院乃兩先正賜額書院

也揭額歲月已乆病裏茟畫尤

拙而必親書鏤板以下者所以

寓予尊敬之心也噫人主尊賢

出扵至誠則亦庶㡬㝎士趨而

熄邪說予意夫豈偶然㢤其令

儀曺並即懸揭仍為賜祭

丙申十月 日

政大夫行議政府▨▨▨▨▨ 經筵春秋館事 世子左賓客▨▨▨厚筆

惟我 二宋先生實百代之宗師而不幸異言喧豗世道大亂我

聖上睿智出天灼見是非遂

手書金額遣承㫖分揭扵華陽興巖二院仍 賜備忘昭示八方

其尊賢闢邪之㓛直與三聖共貫扵是斯文大㝎士趍歸正實千

古所無之盛擧為東方無疆之慶嗚呼㢤于時興巖多士建議

曰繡榟籠金榮耀雖極難保其長存遂立小碑扵院庭摹冩八石

以為永乆之啚其慮遠矣其誠至矣敢記其始末俾刻于下方

門人安東權尙夏敬題

門人通訓大夫尙州牧使趙正萬謹書

崇禎紀元後九十五年壬寅立

 

흥암서원비(興巖書院碑) 비망기(備忘記)

내가 생각해보니 낭성(娘城 : 청주)에 있는 화양서원(華陽書院)과 상산(商山 : 상주)에 있는 흥암서원(興巖書院)은 두 선정신(先正臣)2)의 사액서원(賜額書院)3)인데, 편액(扁額)을 건 지 오 랜 세월이 흘렀다. 병중이라 필획(筆劃)이 매우 졸렬하나 기어이 친히 써서 판자에 새겨 내리는 것은 나의 존경하는 마음을 표시하고자 해서이다. ! 임금이 지성으로 어진 사람을 존경한다면 또한 선비들의 취향이 정해져 사설(邪說)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니, 내 뜻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예조에서 즉시 걸게 하라.”고 한 뒤 사제(賜祭)4)하였다. 병신년(丙申年) 10월 일. 우리 두 송 선생은 실로 백대의 종사(宗師 : 우러러보는 스승)였으나 불행히도 이단의 말이 분분하여 세도(世道)가 크게 어지러워져버렸다. 우리 성상은 예지가 뛰어나 시비를 환히 알고서 마침내 손수 편액을 쓰고 금자(金字)로 새겨 승지를 보내 화양(華陽)흥암(興巖) 두 서원에 나누어 걸게 하고 이어서 비망기를 하사하여 온 나라에 분명하게 밝혔다. 어진 사람을 높이고 사설(邪說)을 배척한 공은 바로 세 성인과 일관(一貫)된 것이다. 이리하여 사문이 대대로 안정되고 선비들의 취향이 올바로 귀결되었으니, 이는 실로 예전에 성대한 일이고 우리나라의 무궁한 경사이다. 아아, 훌륭하도다. 이때 흥암의 많은 선비들이 나무에 새겨 금으로 입혀 놓아 극도로 영광스럽기는 하나 오래도록 보존하는 것은 보장하기 어렵다.’고 한 뒤, 서원의 뜰에 작은 비석을 세우고 글자를 베껴 돌에 새겨서 영구히 전하자고 건의하였다. 그야말로 생각은 원대하고 정성은 지극하여 감히 전말을 기록하여 아래쪽에 새기게 하였다. 문인(門人) 안동(安東) 권상하(權尙夏) 지음. 문인 통훈대부 상주목사(通訓大夫尙州牧使) 조정만(趙正萬) 글씨. 숭정기원후 95년 임인년(경종 2, 1722)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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