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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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 삼계서원 |
명칭 | 『九思堂集』 |
문화재 지정 표기 | |
저 자 | 金樂行 |
소장정보 |
卷之八, 雜著, 記鷲棲行
將縛數椽屋。家人勸令入鷲棲寺求麻骨。幼宅不可。幼平勖之。余亦自念僧舍覆瓦。麻骨非其所甚惜。特以應民間求請而已。求之無甚害義。遂不復廣謀。會妻叔父上舍公以合藥。有鷲棲之行。知余欲往。使從之。蓋公亦不以爲不可也。旣至。旁近閭閻上下來聚者。殆與僧徒相半。皆爲麻骨來者也。左右攫拏爭多競捷。喧閙雜沓。便作一市肆。得之多寡。隨其力之強弱。僧徒無所與焉。晩至而無奴者。責之僧徒。至或加以笞朴。亦不能得其朝夕供饋。牛馬芻牧。又紛然不勝其騷擾。所謂三寶和尙奔走應接。不遑小息。如是者數日而罷。余心竊愍然。而旣往在其中。義理爲利欲所奪。不能超然棄歸。以上舍公之力。得數十束。曝乾藏弆。皆賴公指使。頗自幸其不空行。及歸。恍然如初醒之人。追思其大醉時也。糟糠婦人。雖非有遠識者。常恐以窮故受恥辱。使知其如此。必不勸余行。幼平亦不當贊之也。上舍公廉介。取予不苟。所居屋下三架茅茨也。宜若須麻骨者。方爲二溪山長。而鷲棲乃三溪屬寺也。彼時院僕以其私往留寺中者三四人。苟欲取之。不患無力勢。而泊然無一言相干。是其心內必非我也。然拳拳爲我費心力如彼者。特恤我之窮耳。孟子曰。窮不失義。李克曰。窮視其所不爲。余以窮故。旣自失義。爲生平所不爲。又令漬及於長者。良可愧也。旣能知悔。後宜愼之。玆備錄焉。且以見幼宅之愛我爲藥石也。
몇 칸의 집을 지으려고 함에, 집사람이 취서사에 들어가서 겨릅〔麻骨〕을 구해 오길 권하였다. 유택(幼宅)은 안 된다고 하고, 유평(幼平)은 해보자고 하는데, 나도 또한 스스로 생각해 보니, 절집은 기와를 덮기 때문에 겨릅은 그다지 아끼는 것이 아니고, 다만 민간의 요구와 요청에 응하는 것일 뿐이어서, 이를 요구하더라도 의리를 심하게 해치지는 않을 듯하였다. 그래서 다시 널리 의견을 구해 보지 않았다.
마침 처숙부 상사공(上舍公)이 약을 조제하려고 취서사로 가게 되었는데, 내가 가려고 함을 알고 따르게 하였다. 대개 공도 또한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취서사에 도착하니 근방 마을의 아래 위에서 모여든 자가 거의 승려들 수와 맞먹었는데, 모두 겨릅 때문에 온 자들이었다. 좌우에서 낚아채 가며 많이 가지려 다투고, 시끌벅적하게 뒤섞여 밟아 대어 곧 시장판을 만들었으며, 가져감이 많고 적음은 그 힘의 강약에 따랐으나 승려들은 참견하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늦게 도착해서 종도 없는 자는 승려들을 나무랐다. 심지어 혹 매질을 하기까지 하였으나 또한 얻을 수 없었다. 아침저녁 공양과 소와 말에게 꼴을 먹이는 일 또한 분분하여 그 시끄럽고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였으니, 이른바 삼보(三寶) 스님이 응접에 분주하여 조금도 쉴 겨를이 없었고, 이렇게 며칠이 지나서 끝이 났다.
나는 마음속으로 민망하게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 속에 가 있었기에 의리를 이욕(利欲)에 빼앗겨서 초연하게 버리고 돌아오지 못하였다. 상사공의 힘으로 수십 묶음을 얻어 햇빛에 말려 보관할 수 있었으니, 다 상사공이 지시하고 시켜 주신 덕분이었다. 스스로 헛걸음을 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는데, 집으로 돌아오자 멍하기가 마치 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 대취(大醉)했을 때를 되짚어 생각하는 듯하였다.
조강지처인 내 아내는, 비록 원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항상 곤궁함 때문에 치욕을 당할까 걱정하였으니, 가령 이와 같을 줄 알았다면 반드시 나의 행차를 권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평도 또한 마땅히 찬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사공은 청렴하고 정직하여 주고받음이 구차하지 않다. 거처하는 집 아래채가 세 칸의 초가집이니, 마땅히 겨릅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막 삼계서원(三溪書院) 원장이 되었는데, 취서사가 바로 삼계서원에 귀속된 절이었다. 그때 서원의 노비가 개인적으로 취서사에 가서 머물고 있는 자가 서너 명 있었으니, 진실로 가지려고 하면 힘이 없을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담담하게 한 마디도 간섭함이 없었으니, 그 마음속으로 반드시 나를 비난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애써 나를 위하여 저와 같이 마음과 힘을 써 주신 것은 다만 나의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서일 뿐이리라.
맹자는 “궁해도 의를 잃지 않는다.” 하였고, 이극(李克)은 “궁할 때에 그 해서는 안 될 일을 살펴본다.”라고 하였다. 나는 궁함 때문에 이미 스스로 의를 잃어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고, 또 어른에게까지 폐를 끼쳤으니 참으로 부끄러워할 일이다. 이미 뉘우칠 줄 알았으니, 이후에는 마땅히 조심해야겠기에 이를 갖추어 기록하고, 또 유택이 나를 아껴 약이 되는 유익한 말을 했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