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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삼계서원 > 문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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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삼계서원
명칭 『響山集』
문화재 지정 표기
저 자 李晩燾
소장정보

상세정보

卷之十二, , 三溪書院冲齋權先生廟墟碑後識

오른쪽의 글은 사암(思菴) 박 문충공(朴文忠公 박순(朴淳))이 지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선생의 비명(碑銘)이다. 글을 지은 것이 작위를 더하여 증직하기 이전이어서 마침내 묘도(墓道)에 세우지 못하였다. 그 후에 조옥천(趙玉川 조덕린(趙德隣)), 권창설재(權蒼雪齋 권두경(權斗經)) 등 여러 공들께서 삼계서원의 묘정에 세우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제 잡초가 우거진 유허지에 사모하여 우러르는 마음을 붙일 데가 없으므로 더욱 이미 이루어진 공론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비석돌 하나를 떼어 왔는데, 살펴보니 돌은 작고 글자는 많아서 서문은 생략하고 명문만 새겼으니, 형편이 부득이한 것이다. 그런데 묘명(墓銘)을 서원 터로 옮겨 오는 것은 사리에 합당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삼계의 상류에 묘소가 가까이 있으니 양양(洋洋)한 선생의 혼령이 오르내리시기에는 저곳과 이곳의 구별이 없어 그립고 사모하는 마음을 의탁할 수 있을 듯하다. 이것도 하나의 예가 되지 않겠는가. 대개 서원은 만력(萬曆) 무자년(1588, 선조21)에 창건되었고 현종 경자년(1660, 현종1)에 사액이 되었으며 금상 신미년(1871, 고종8)에 훼철되었다. 창건과 훼철이 모두 천명이나 선생의 도학과 충절은 실로 천지에 우뚝 서서 백세 후의 성인을 기다릴 수 있으니, 산이 평평해지고 바다가 마르더라도 이 비석은 쓰러지지 않으리라. 이 비석이 쓰러지지 않는 것도 천명이니, 나는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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