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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산청군
서계서원 - 西溪書院

서계서원은 오건(吳健)[1521~1574], 오한(吳僩)[1546~1589], 오장(吳長)[?~1616], 박문영(朴文楧)[1570~1623]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1606년(선조 29) 창건되었다. 오건은 남명 문인의 좌장격이었으며 오한은 오건의 사촌동생, 오장은 오건의 아들이다. 처음 건립될 때는 오건만 제향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22년 복원하면서 오한, 오장, 박문영도 함께 제향하였다. 산음현 출신의 이들은 남명학파의 일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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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문화재청 홈페이지
위치 경남 산청군 산청읍 덕우지길 51 (지리, 서계서원)
건립연도 1606
제향인 오건, 오한, 오장, 박문영
문화재 지정 표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이칭 / 별칭
기타 서원

상세정보

서계서원은 오건(吳健)[1521~1574], 오한(吳僩)[1546~1589], 오장(吳長)[?~1616], 박문영(朴文楧)[1570~1623]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1606(선조 29) 창건되었다. 산음현에서 태어난 오건은어머니가 병들자 날마다 인분을 맛보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고, 어머니 사망 후 3년간 여묘살이와 심상(心喪)을 행하여 1549(명종 4) 왕으로부터 복호(復戶)를 받았다. 2년 뒤인 1551(명종 6) 삼가에 있던 조식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다. 이황의 문인이기도 한 그는 1558(명종 13)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 사간원정언, 사헌부 헌납·지평, 홍문관 교리 등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1572(선조 5) 이조정랑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낙향할 때 그 후임으로 김효원을 추천한 바 있다. 남명학파의 좌장격으로서 문인들은 그를 덕계선생이라 칭했다.

오한은 오건의 사촌동생으로 조식과 오건에게 공부를 배웠다. 오장은 오건의 아들로 그 역시 아버지에게 공부를 배우고 하항·정인홍·김우옹·정구에게서 수학하였다. 1610(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원 정언, 경성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1613(광해군 5) 영창대군 사사사건과 인목대비 유폐사건이 발생하자 대북과 결별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정온이 영창대군 사사사건을 비판하는 갑인봉사소를 올려 제주도로 유배되자, 이를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토산(兎山)으로 유배당하여 생을 마감했다. 산음현에서 태어난 박문영은 정인홍·정구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한 바 있다. 같은 고향의 오장과 절친하여 오장이 유배지에서 사망하자 직접 찾아가 장례를 치러주었다. 1606(선조 39)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선조가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으려 하자 반대하는 상소에 동참하였다. 16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정사를 짓고 은거하였으며 1623(인조 1) 생을 마감하였다.

서원이 위치한 서계는 평소 오건이 살던 곳으로 오건 사망 이후 1606년 정구가 박문영과 함께 사당을 짓고 향사를 지냈다. 장복추가 쓴 덕계선생신도비명(德溪先生神道碑銘)에 의하면, 1677(숙종 3) 정사년에 외손인 강휘정(姜徽鼎)이 사촌형 강휘망(姜徽望)과 함께 상소를 올려 사액을 받았다고 한다.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22년 다시 복원하면서 오한, 오장, 박문영을 함께 제향하였다. 19837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9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문화재지정번호가 폐지되면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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