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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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 완계서원 |
명칭 | 『順菴集』 |
문화재 지정 표기 | |
저 자 | 安鼎福 |
소장정보 |
◦ 『順菴集』, 安鼎福, 권20, 祝文, 「浣溪書院東溪權公奉安文」
浣溪書院東溪權公奉安文 己酉
猗歟先生。天賦懿德。曰忠曰孝。有才有識。受業儒門。夙蒙褒嘉。繼遊石田。道義相磨。名通桂籍。若將有爲。値世昏亂。下四字缺。奸凶秉國。勢焰薰灼。江右一帶。靡然服役。獨立不懼。目以老賊。懔懔氷霜。屹屹砥柱。由是丹人。賴免詿誤。逮至改玉。入踐右螭。繩愆糾謬。歷敭三司。典禮之䟽。士林傳說。刺賄之章。墨相屈膝。銀臺諫長。以退爲榮。淸名直節。星斗崢嶸。出處進退。惟義之行。終始典學。志存蛾述。湖邑佩符。海縣泣玦。隨處設敎。衿紳成列。矧玆杜陵。杖屨之鄕。不倦誘掖。曾設齋堂。月課之法。日將之工。伊川遺訓。湖門餘風。遺迹所存。禮當報事。合祀道川。已幾十紀。江城舊祠。賜額新揭。主客斯判。院宇宜別。亦有朝命。許令改建。浣溪舊址。允叶衆願。新廟翼翼。籩豆有踐。肅恭將事。多士駿奔。洋洋如在。怳接淸芬。煕我文猷。其永無垠。
완계서원에 동계 권공을 봉안하는 글[浣溪書院東溪權公奉安文] 기유년
아, 선생은 아름다운 덕을 타고나시어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우며 재주와 식견이 있었습니다. 유문(儒門)에서 수업하여 일찍부터 칭찬을 받았고 석전(石田)의 문하에 나아가 도의(道義)로써 서로 연마하였습니다. 과거에 합격하여 장차 큰 일을 할 듯하였으나 혼란한 시대를 만나 아래에 네 글자 원문 빠짐 간사한 무리들이 나라의 권력을 휘어잡아 기염을 토함에 강우(江右 경상우도)의 일대가 한결같이 붙좇아 복종하였으나 홀로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노적(老賊)이라는 말로 지목하였으니, 늠름하기가 빙상(氷霜)과 같고 우뚝하기가 지주(砥柱)와 같았는바, 이로 말미암아 충심을 다하는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반정(反正)을 함에 이르러 조정에 들어가 주서(注書)가 되어 허물을 바로잡고 삼사(三司)를 두루 거쳤는데, 전례(典禮)에 관한 상소문은 사림들 사이에 전송되었고, 뇌물 받는 관리를 풍자한 글에는 탐욕스러운 재상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은대(銀臺)가 되고 간장(諫長)이 되어 물러가는 것으로써 영광을 삼았기에 맑은 이름 곧은 절개가 북두성과 같이 우뚝하였으며, 벼슬하고 들어앉고 나아가고 물러남을 오직 의리에 따라 하였고, 종시토록 학문에 힘을 쏟으며 계술하는 데 뜻을 두었습니다. 전라 감사가 되었을 때나 바닷가에 귀양갔을 때 곳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어 선비들이 줄을 이었거니와, 더구나 이 두릉(杜陵)은 선생께서 머물러 있던 곳으로서 후학을 이끌어 인도하는 일을 게을리 아니하여 일찍이 서당을 설치하였으니, 다달이 시험보이는 법과 날로 나아가게 하는 공부는 이천(伊川)의 남긴 가르침이요 호문(湖門)의 유풍이었습니다.
유적이 남아 있는 곳에 보답하여 제사지내는 것이 예로 보아 합당한데, 도천서원(道川書院)에 배향한 지 이미 거의 120년이 되었습니다. 강성(江城)의 옛 사당에 사액(賜額)이 새롭게 걸리니 주객(主客)이 이에 나뉘어 서원을 별도로 세워야 마땅할 듯하고, 또한 조정의 명이 있어 다시 세울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완계(浣溪)의 옛 땅이 실로 여러 사람들의 뜻에 맞아 새로 우뚝한 사당을 짓고 제사를 받들게 되었습니다. 경건히 제사를 올리느라고 많은 선비들이 달려 나오니 양양(洋洋)하게 위에 계셔서 어렴풋이 맑은 향기를 접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문의 도(道)를 빛나게 하심은 영원히 끝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