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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귤림서원·오현단 > 문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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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귤림서원·오현단
명칭 『동계집(東溪集)』, 卷 3 - - 大靜遺墟碑[李源祚 讚]
문화재 지정 표기
저 자 정온(鄭蘊)
소장정보

상세정보


이원조(李源祚)


대정(大靜)의 동성(東城)에는 동계 정 선생이 적거(謫居)할 때의 유허(遺墟)가 있으니, 우거진 풀밭으로 변한 지가 거의 수백 년이 되었다. 지현(知縣) 부종인(夫宗仁) 사또가 그 유지(遺址)에 서재(書齋)를 짓고 선비들을 거처하게 하였다. 부 사또는 본래 이 지방 사람으로, 정치를 행하면서 무엇을 먼저 하고 뒤에 해야 하는지를 알았으니, 가상하다고 할 만하다. 내가 《읍지(邑誌)》를 정리할 때에 선생의 율시 한 수와 발문 한 편을 찢어진 글 속에서 찾아내어 이를 《읍지》에 실어 드러내었고, 순찰하는 길에 대정현을 지나면서 그 유허지를 돌아보다가 드디어 석공에게 비석을 세워 표시하게 하였다.

아, 선생의 덕의(德義)와 명절(名節)은 천지와 나란하기 때문에 유적이 있는 곳이면 사람들이 모두 경모하는 것이다. 내가 일찍이 모리에 들어가서는 화엽루에 올라 숭정력에 쓴 시를 삼가 완상하였고, 아림(娥林 거창(居昌))의 용산재(龍山齋)를 방문해서는 선생의 묘소에서 국화주를 올리는 제사에 참석하였고, 영가(永嘉 안동(安東)) 이씨의 집에서는 선생이 남한산성이 포위되었을 때에 쓴 혈서(血書)를 보았는데, 아롱진 핏자국을 확인할 수 있어 비탄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지방에 와서는 귤림사(橘林祠)에서 선생을 배알하였고, 또 비석에 의탁하여 유허지에 내 이름을 기록했으니, 내가 선생께 행운을 얻은 것으로 말하자면, 오랜 세대가 지났으나 아침저녁으로 자주 뵙는 듯하다고 할 것이다. 나는 선생에게 외손이 되지만 선생을 경모하는 것은 공적인 것일 뿐, 어찌 감히 사사로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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