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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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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산해정
명칭 한강집(寒岡集)
문화재 지정 표기
저 자 정구(鄭逑)
소장정보

상세정보

卷之九 - 雜著 - 書舊時海亭詩後
余於丁卯冬。侍曹先生函丈於盆城之山海亭。喜其兼山海之趣。而合幽貞之吉也。竊有慕焉。丁亥秋。始得此地。又愛其儒僊舊迹之親切也。偶因朋友會敍。酒且半。題此詩。坐中有取以爲擔當之計者。謂好事可以卽就矣。未幾。時世多事。旋遭壬辰兵火。十六七歲月。忽然飄過。癸卯冬。余始返故山。越明年。咸州士友輩。相與結茅數椽。張文哉適假居其傍。協力成就。纔十年而屋又傾頹。則勢將還爲路傍之棄地。文哉更闢址列礎。架樑覆瓦。經營數載。費盡辛苦。余因浴海而來。輪奐之美。結構之精。不惟不啻前日之草舍。而又非余當初所望也。竊幸三十年宿願。畢竟得遂。而顧余衰敗已甚。方在積病濱死之中。又安得窮山海之勝賞。極幽遐之壯觀。有如盛年期許也。只有終日杜門而已。然襟期之爽。仁智之樂。則何可與他境界比喩也。仍念舊時同遊。無一存焉。今所追隨。多是丁亥以後之人。寧不爲之俯仰長懷。慨然興嗟也邪。文哉請刊此詩。余遂略序顚末以志焉。
내가 지난 정묘년(1567, 명종22) 겨울에 조 선생(조식(曺植)) 함장(函丈)을 분성(盆城 [김해의 옛 이름])의 산해정(山海亭)에서 모시고 있었는데, 이는 그곳이 산과 바다의 흥취를 겸하고 있고 은거하기에 적합한 점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 뒤 정해년(1587, 선조20) 가을에 비로소 이곳을 얻었는데, 또 이곳에 유선(儒仙 최치원(崔致遠))의 자취가 배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당시 우연히 벗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을 때 이 시를 지었다. 그러자 좌중에 시에서 말한 의미를 살려 자기가 정자를 짓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가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자라면 즉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세상일이 복잡해지고 게다가 임진왜란을 만나 16, 7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계묘년(1603, 선조36) 겨울에 나는 비로소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 이듬해에 함주(咸州 함안)의 사우(士友)들이 힘을 합쳐 조촐한 초당 한 채를 지었는데, 장문재(張文哉 장익규(張益奎))가 때마침 그 곁에 임시로 기거하며 힘을 도와 집을 완성하였다. 그 뒤 겨우 10년 만에 집이 또 쓰러져 장차 다시 길가의 버려진 땅이 될 상황에 이르자 문재(文哉)가 다시 터를 다듬고 주춧돌을 놓으며 들보를 올리고 기와를 덮는 등 몇 해 동안 집을 짓느라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 내가 바닷물에 목욕하기 위해 이곳에 와 보니, 그 겉모습의 아름다움이나 내부 구조의 정밀함이란 지난날 초당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고 또 내가 당초에 바랐던 규모를 벗어난 것이었다.
이제 30년의 숙원이 결국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내 자신을 돌아보면 이미 극도로 노쇠하여 병에 신음하며 금방 죽을 처지에 놓였으니, 어찌 지난 젊은 시절에 기대했던 것처럼 산이며 바다의 빼어난 경관과 깊숙하고 외진 곳의 장관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겠는가. 그저 하루 종일 문을 닫고 들어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흉금이 호방해지고 산수를 즐기는 그 즐거움은 어찌 다른 장소와 견줄 수 있을 것인가. 아울러 생각하니 지난날 그 당시 이곳에서 나와 함께 노닐던 사람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고 지금 함께 어울리는 자는 대부분 정해년(1587) 이후 사람들이다. 그 어찌 천지를 둘러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고 서글픈 심정으로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재가 이 시를 판각하겠다고 청하기에 이 정자의 전말을 대강 정리하여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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