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_META_TITLE_ 휴관일입니다.


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소양서원 > 문집

기본정보

좌우로 스크롤하시면 전체 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소양서원
명칭 담헌서(湛軒書)
문화재 지정 표기
저 자 홍대용(洪大容)
소장정보

상세정보

卷三, 書, 與嶺伯論瀟陽祠書
本邑有所謂瀟陽書院者。妥祀鄕賢數人而初無宣額之擧。名雖書院。實則里社。始未知其爲誰某。偶閱文籍。見其一。卽宣廟朝罪死者鄭彥信也。夫書院。士子之所關。俎豆。賢者之所享。春祠秋享。進退瞻仰。深慕永懷。薰陶漸染。如非功德節義逈出凡流而爲士林之矜式者。則其不可一日而冒據也明矣。夫尊尙匪人則士趨不正。士趨不正則邪說肆行而禍亂斯興。此其關世道者亦不輕而重矣。彥信本以麤悍鄙夫。倖占軍功。致位卿相。跡其平生。雖安享寵祿。老死牖下。其於俎豆之享則已爲千萬不近。况以汝立之黨。受罪於桁楊之下而竄死於絶島之中者哉。誘脅宣傳。致有遲延失捕之擧。欲斬告者以爲滅口翻獄之計。時事之論。累有通書。內應之說。再出賊招。賜死之命。雖反汗於違覆。肆市之誅。實難容於王法。如是而尊之里社。依仰矜式。則是謂黨逆無傷而謂節義不足貴。爲士者何所法而爲賊者何所懼。正氣何所培而邪說何所闢哉。雖布衣韋帶鄕曲賤士。苟有是非之心而知春秋之義者。必將奮臂提斧。斫破神牌。以雪神人之憤。况掌治一境。自任風敎者其可恝然而已乎。向者進謁。計欲面禀。忙撓未果。顧此士林趨向。所關非細。黜享之擧。斷不容或緩。故替書仰請。略陳其槩。而旣未宣額。不過鄕祠。則雖縣官任自斥黜。少無可疑。而第事關儒林。不敢擅斷。故欲俟回敎。牒報受題。以重其事。此非特區區懲討之義得以少伸。抑閤下宣化之功。亦將無愧於古人矣。不審閤下以爲如何。

본읍(本邑)에 있는 소위 소양서원(瀟陽書院)은 이 고을 현인(賢入) 몇 분을 향사(享祀)하는 곳인데, 당초에 선액(宣額)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름은 비록 서원(書院)이지만 사실은 이사(里社)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몰랐으나 우연히 어떤 문적을 보다가 그 중에 하나를 발견했는데, 곧 선조(宜祖) 때 죄지어 죽은 정언신(鄭彥信)이었습니다.
대저 서원이란 선비와 관계되는 것이고, 조두(俎豆)란 어진 자를 향사하는 것입니다. 봄과 가을로 향사하면서 나아가고 물러설 때에 우러러 보며, 깊이 사모하고 깊이 생각하므로 그의 덕(德)에 감화(感化)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공덕(功德)과 절의(節義)가 보통에서 뛰어나서 사림(士林)의 모범이 되는 자가 아니면 하루도 함부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한 일입니다. 대저 사람답지 못한 이를 높이면 선비의 귀추(歸趨)가 바르지 못하고, 선비의 귀추가 바르지 못하면 간사한 말이 제멋대로 행하고 화란이 따라 일어날 것이니, 이것은 세도(世道)에 관계됨이 또한 가볍지 않고 무거운 것입니다.
언신은 본디 추솔하고 비루한 사람으로서 요행히 군공(軍功)을 차지하여 경상(卿相)의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더듬어 보면 비록 은총과 복록을 편히 누리다가 제대로 늙어 죽었다 하더라도 그 조두의 향사에는 이미 여러 모로 합당치 못한데, 하물며 여립(汝立)의 당으로써 형틀[桁楊] 아래에서 죄를 받고 외딴 섬으로 귀양가서 죽은 자임에랴?
그는 심지어 선전관을 꼬이고 위협하여 체포할 일을 지연시키고, 고발한 자를 죽임으로써 비밀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한 다음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울 계획을 부렸고, 시사(時事)를 논함에 있어서도 여러 번 밀서(密書)로 통한 적이 있었으며, 남모르게 적(賊)을 도와주었다는 말이 두 번이나 적의 자백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사사(賜死)의 명령은 비록 번복 취소되었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에서 찢어 죽이는 일은 국법에 있어서 사실 용서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자를 이사(里社)에서 존숭하여 우러러 모범으로 삼는다면 이는 역적에 편드는 것도 해롭지 않을 뿐더러 절의를 지키는 일이 족히 귀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비로서는 무엇을 법 삼고 역적으로서는 무엇을 두렵게 여기겠으며, 정기(正氣)를 무엇으로 배양하고 사설(邪說)을 무엇으로 물리칠 것입니까? 비록 향곡의 가난하고 미천한 선비일지라도 진실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으로 춘추(春秋)의 의리를 아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흥분해서 소매를 걷고 도끼로 신도비(神道碑)를 깨뜨려서 신(神)과 사람의 울분을 씻을 것입니다. 더구나 한 고을을 맡아 다스리고 풍속과 교화를 스스로 책임진 자로서 어떻게 그냥 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지난 번 만났을 때 아뢰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바쁘고 번잡하므로 뜻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미지

  • 등록된 이미지가 없습니다.
TOP
한국서원 제향인물 동아시아서원 서원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