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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안동시
역동서원 - 易東書院

역동서원은 고려말 문신이자 학자인 우탁(禹倬)[1262~1342]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황은 그를 동방도학연원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였고, 그 일환으로 우탁을 제향하는 역동서원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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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문화재청 홈페이지
위치 경북 안동시 송천동 388
건립연도 1567
제향인 우탁
문화재 지정 표기 경상북도 기념물
이칭 / 별칭
기타 서원

상세정보

역동서원은 고려말 문신이자 학자인 우탁(禹倬)[1262~1342]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우탁은 1262(원종 3) 단산현 품달리 신원[현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서 태어나 1290(충렬왕 16) 과거에 급제하고 영해사록(寧海司錄)을 역임하였다. 감찰규정(監察糾正)을 역임할 때에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려 국왕의 전횡을 직언하였다. 이후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로서 성균관 유생들에게 성리학을 강론하며 신유학 진흥에 기여하였다. 안향(安珦)의 문인으로 이색(李穡)의 청으로 문희(文喜)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황은 그를 동방도학연원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였고, 이는 우탁의 서원 건립으로 이어졌다. 처음 창건에 대한 논의는 1558(명종 13) 3월 이황의 문인 금난수(琴蘭秀)와 조목(趙穆)에 의해 제기되었다. 창건 명분은 그가 경학에 밝고 충의대절이 있으며 진퇴의 정당함이 빼어나 후학의 사표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관직에서 물러나 예안에 복거하며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 것도 명분이 되었다. 다만 이때는 서원 건립 터만 확인하고 본격적인 공사는 약 10여년이 흘러 이루어졌다. 1565(명종 20) 9월 건원 논의가 다시 일어났고 1566(명종 21) 관아를 짓고 남은 기와장 9천장을 받아 서원 건립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예안 사족들의 물력을 제공 받아 1567(명종 22) 2월 공사를 시작하였다. 지방관과 재지사족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같은 달 4월 강당, ·서재가 완성되었고 가을에 모든 건물이 완성되었다. 1568(선조 1) 서원의 제의와 규약을 정하였다. 이때 이황은 제향의례는 소수서원의 것으로 삼고, 원규는 이산서원의 것을 참고하여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자문해왔다. 서원의 체제가 갖추어지자 1570(선조 3) 8월 우탁의 위패를 봉안, 1683(숙종 9) 10월 사액을 받았다.

역동서원은 예안에 처음 건립된 서원으로서, 이황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립에 관여한 서원이었다. 창건 이후 1660(현종 1)·1704(숙종 30)·1740(영조 16) 당재(堂齋)를 수리하였고 1750(영조 26) 묘우 수리, 1784(정조 8) 정일재광명실동재서재전사청주소 등을 개축하였다. 1810(순조 10) 묘우를 재수리하고 1835(헌종 1)에는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다. 그러나 1871(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서원 소장 서적과 기물들은 도산서원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1966년 지방 유림들이 논의하여 1969년 현 위치로 복원하였다. 2003922일 경상북도 시도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되었다2021년 문화재지정번호가 폐지되면서 경상북도 시도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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