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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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 호계서원 |
명칭 | 『先祖操省堂日錄』 |
문화재 지정 표기 | |
작성주체 | - |
작성지역 | - |
형태사항 | 크기: 장정: 수량: 재질: 표기문자: |
◦ 『先祖操省堂日錄』, 1612~1617, 조성당 金澤龍의 일기
『先祖操省堂日錄』권1
正月五日[庚子]
…遂下易院又謁廟。論月川先生從享。當行於二月中丁事。通文榮。安兩書院。…
…그리고 역동서원易東書院으로 내려가 또 사당에 참배하고, 월천月川 조목趙穆선생을 2월 중정일中丁日에 종향從享할 것을 의논하고, 영천榮川과 안동의 두 서원(이산서원, 여강서원)에 통문을 보냈다. …
(正月)卄六日[辛酉]
俺先發至陶山。以月川從享諸具會議事也。會者。堤川尹義贊吳金兩君任之大禹成憲尹東昌李淙申忠男李景元也。書月川從享通文於廬江。伊山兩院。有曰。今二月十二日。從享月川於陶山尙德祠。雖曰賜額書院。粢盛庶品不煩官供。從中外士論。敢行祀事。謹此通喩云云。又議定位板所書當否器數多小。當商議云。考諸竹溪志。文成公祠廟文貞文敬公從享。而器數無差等。當以是爲倣。而時未定。吾云。易東有先生手書所定白雲洞祭享圖亦不改。勢似當以此爲定。而堤川公時未解矣。主倅欲與靑松會話。兼請我留。以琡病爲言。修書靑松求藥。且修求新寧長水兩書。且請堤川奉柬。以德龍季將發新寧之行故也。…
나는 먼저 출발하여 도산서원에 도착하였는데 월천 선생을 종향(從享 : 퇴계 선생과 배향하는 일)할 때 갖추어야 할 여러 물품들에 대해서 회의하기 위해서이다. 모인 사람은 제천 금응훈·윤의찬尹義贊·오吳와 김金 양군兩君·임지대·우성헌禹成憲·윤동창·이종李淙·신충남申忠男·이경원이다. 월천 선생을 종향하겠다는 「월천종향통문」을 여강서원廬江書院과 이산서원伊山書院 두 서원에 보냈다. 통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번 2월 12일에 도산서원의 상덕사에 월천 선생을 배향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라에서 편액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기는 하지만 제수 등 여러 가지 물품은 관청을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안팎의 사림들 여론을 따라 감히 제사를 올리고자 하니 삼가 통문을 보내어 알립니다.”라고 하였다. 또 신위神位를 쓰는 위판位板에는 무엇을 쓸 것인가, 제기의 숫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당연히 상세히 논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주세붕周世鵬의 『죽계지竹溪志』를 고찰하니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사당에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문경공文敬公 안보安輔를 배향할 때 제기의 숫자에 차등이 없으니 마땅히 그대로 따라해야 하는데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내가 말하기를, “역동서원에는 월천 선생이 직접 써서 정한 「백운동제향도白雲洞祭享圖」가 있으니 고쳐서는 안 되며 형편상 그것을 따라 정해야 할 듯하다. 그것을 정식으로 삼아야한다.”고 하였지만 제천 금응훈은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예안 현감이 청송(이운)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하였으며 아울러 나도 머물러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아들 김숙의 병을 말하고 청송에게 약을 구하는 편지를 썼다. 또 신녕 현감과 장수 찰방長水察訪 두 곳의 수령에 약을 구하는 편지를 썼다. 또 제천 금응훈에게 청하여 편지를 받았다. 왜냐하면 아우 덕룡이 곧 신녕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六月)十四日[丁丑]
晴。■困酲仆臥。琴彦覺修書送月川從享呈文。當送京呈禮判云。答■不須汲汲。琡往見權是中。因見彦覺於易東。則堤川書以不得已會議伊山。廬江兩書院儒生。當爲勿送呈文於京洛云云。殊未可知也。
6월 14일 맑음
술기운으로 피곤하여 누워있었다. 금경(자는 언각)이 편지를 써서 월천 선생 종향 정문呈文을 보냈다. 서울로 보내어 예판禮判에게 드릴 것이라고 한다. 급급汲汲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숙琡이 권시중에게 가서 만났다. 그리고 역동서원에 가서 금경(자는 언각)을 만났더니, 제천 금응훈이 편지를 보내어, ‘부득이 이산서원과 여강서원 두 서원의 유생들과 의논해야 하니, 서울로 정문呈文을 보내서는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정말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