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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청성서원 > 문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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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청성서원
명칭 『葛庵集』
문화재 지정 표기
저 자 李玄逸
소장정보

상세정보

◦ 『葛庵集, 李玄逸, 己甲辛癸錄

신축년(1721, 경종1) 2월에 문인(門人)인 진사(進士) 김성흠(金聖欽) 등이 소장을 올려 원통한 사정을 호소하였으나 정원(政院)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아 마침내 철환(撤還)하였다. - 갑술년 초에 낙하(洛下)의 사우(士友)들이 소장을 올려 규혼(叫閽)하려 하다가 사안이 국옥(鞫獄)에 관계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소장을 다 지어 놓고 주저하다가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위리안치(圍籬安置)된 뒤에 영남의 인사들이 또 창의(倡義)하여 소장을 올리려 하였으나 본가(本家)에 화가 미칠까 염려되었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이때에 이르러 문하(門下)의 제자들이 함께 뜻을 모아 의론을 정하고 원통한 사정을 호소하였다. -

소청일기(疏廳日記)의 대략

신축년 정월 16일에 문인(門人) 김성흠(金聖欽) 등이 함께 의논하기를,

29일에 김세용(金世鏞) 등이 청성서원(靑城書院)에 모였다. 이날 천성(川城)의 장로들이 연명하여 서찰을 보내왔는데 그 대략에,

전날 발의한 일은 회원이 얼마나 됩니까? 동지들이 과연 호응해 주어 일이 성취될 가망이 있습니까? 늙고 병들어 쇠잔한 몸이라 가서 말석에 동참하지 못하니, 서글프고 답답한 심정을 어찌 견딜 수 있겠습니까. 다른 곳에 혹 서찰을 발송하고자 하신다면 우리들의 이름도 함께 써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이에 회중(會中)이 답서를 보냈는데 그 대략에,

가르침이 순실(諄實)하고 의리가 명백하니, 재삼 읽어 보매 사람을 감동시키는 바가 있습니다. 저희의 입장에서 어찌 감히 성심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이 일은 비록 스승을 위해 신원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하나 우리 영남에서야 누군들 동참하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도내(道內)에 두루 알려 사체(事體)를 크게 해야 할 터이나 사기(事機)가 이미 급박하여 되돌려 시일을 지연할 수 없으니, 간편하게 일을 처리하고 동지들을 모아 조속히 도성으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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