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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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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서산서원
명칭 「西山書院上樑文」
문화재 지정 표기
구분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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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기타

상세정보

- 西山書院上樑文

하늘 끝(중원)에서 사문(유학)을 잃었거늘, 백세의 인걸이 동방에서 우뚝 태어났네. 예를 실천하여 그 근본을 잊지 않으매, 진영을 특별히 서산에 걸었도다. 백세 뒤에 시대를 건너뛰어 감동하는 것은 마음이요, 하나의 기()로 서로 전하는 것은 이()로다.

삼가 생각하건대, 목은(牧隱) 선조는 실로 도학의 종사(宗師), 중원에 들어가서는 규재(圭齋)에게서 의발을 전수받고 역의(易義)는 우씨(宇氏)에게서 얻었다. 자취를 거두어서 동국으로 와서는, 국가에서 지주와 같이 기강을 바로잡고, 왕의 계획에서는 보불(黼黻)로서 보익하였다. 종묘사직이 머리카락 한 올에 매달린 듯 위태로울 때 천 길 높이의 탁월한 절의를 다하였다.

젊어서는 범공(범중엄)의 뜻을 품어 벼슬에 나아가든 벼슬에서 물러나든 우국의 뜻을 잊지 않았고, 느지막하게는 도령(도연명)의 마음을 보전하여 귀거래하여 아무런 탈이 없었도다. 절개와 영민함과 재주와 마음으로 교화하니, 포은과 도은, 야은 등 여러 유현호걸(儒賢豪傑)이 그 풍모를 듣고 일어나고, 한훤당, 일두, 정암 등 여러 군자들이 그 뒤로 배출되었다.

명나라 황제가 국가의 계획을 감당할 만한 인재라고 감탄할 정도였고, 퇴계 선생이 가장 먼저 마음으로 전하는 대응을 하셨도다. 도에 뜻을 두고 문장에 힘쓰지 않았으니 그 훈업은 참으로 크게 적을 일이거늘, 하나도 국가 사적에 기록되지 않았다.

자손이 동남방에 유락하여 천리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만, 부형의 추모 덕에 영향이 백 년 지난 지금에 이르렀다. 땅을 파서 샘을 만들자, 정령이 가깝든 멀든 관계없이 복덕을 내몰아 가져다주었다. 난초의 향기가 여전히 호산(湖山)에 남아 있는 것은 하늘이 실로 도와주기 때문이고, 본 모습을 본뜬 상이 엄연하게 일백 번의 전화(戰火: 전쟁으로 말미암은 재화(災禍). 또는 그런 피해)와 병란이 지나는 동안에도 남은 것은 귀신이 꾀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뺨의 터럭 한 올까지 완연하게 한 폭의 단청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아아 우리 수은공(睡隱公: 이홍조)의 상이로다.

수은 선생은 꽃다운 기량을 품고 태어났으니, 효성과 우정이 어린 나이에 이미 드러났다. 만년에는 공신의 반열에 올라 충의의 지팡이를 한 손에 짚으셨으니, 집안에 전하는 유일한 장물(長物)이 되었다. ()와 예()를 독실하게 하고 입신두 글자를 부절로 삼아서 평생 청백의 절조를 연마하였다.

자평(동한 때의 고절한 선비)이 지녔던 산수유람의 정을 지녀, 번연히 일월산 아래 향로동 안으로 들어가셨다. 덕공(후한대의 은사)이 세상을 버리고 평안히 지낸 일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로다. 세상에 나지 않고 은둔하여서는 진실로 생불이었고, 세상으로 나가면 인간 세계의 대장부들이 경례하고 따랐도다.

상재(桑梓: 선영이 있는 고향)의 조상 덕에 감동하고 흠모하는 그윽한 충정으로, 모두 함께 향화를 올리고 제향을 드리는 인사(禋祀)를 함께 하네. 서원(西原)의 고사를 법으로 삼을 만하기에, 문원(文院)의 끼친 제도 새롭게 하였네.

청산에 집을 얽었기에 동리(東籬)의 세 갈래 길을 족히 낼 수 있고, 동문(계곡 어구)이 깊이 잠겨 있기에 누항의 표주박 하나로 지내던 즐거움을 완연히 띠고 있다. 천지를 부앙하면 모두가 솔개 날고 물고기 뛰어오르는 경지이니, 두 분 조상의 흉금과 운치를 상상하겠다. 아침 해가 밝아 와서 너의 방종함을 드러내리니, 후손이 경모하고 그리워할 것을 두려워하였도다.

그 글을 읽고 시를 외면 두 선조의 한가로이 바람 쐬고 시 읊으며 돌아오는 즐거움이 저절로 있으니, 그 시대를 논하고 그 도를 위로 벗하면 어이 고금의 차이가 있겠는가?

짐짓 한 마디 말을 창언하여, 상량 노래 여섯 곡을 짓노라.

 

어여차, 들보를 동쪽으로 던져 보니,

일천 성인들의 연원이 일맥으로 통하나니,

만약 당시의 전수한 오묘한 도를 안다면

그대는 고정옹(주자)을 친견하게 되리라.

 

어여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져 보니,

지척이 영원이라 길을 헷갈리지 않는다만,

다시 분음(일각)이라도 애석히 여기어야 하고,

부지런 부지런히 만물을 이롭게 하느라 아침 닭 우는 소리를 판별하라.

 

어여차, 들보를 남쪽으로 던져 보니,

향로봉이 깎아지른 듯 서서 하늘에 참예하네.

겸산(兼山: 간괘의 그침을 안다.’는 괘사를 뜻함)의 괘획을 좌우에 새겨 두었으니,

지수(止水)의 도리가 광명하여 온갖 이()를 함유하고 있네.

 

어여차, 들보를 북쪽으로 던져 보니,

소나무 계수나무 그늘이 들어차고 산길은 비스듬하여라.

하나의 천기(天機)가 어이 잠시라도 정지하랴.

한가한 속에 체인하여 그침 없음을 귀하게 여기노라.

 

어여차, 들보를 위로 던져 보니,

상서로운 세상에 풍모와 위의로 남들의 숭앙을 받았어라.

문장의 조박에서 그분을 찾지 말라.

뿌리 깊어 잎이 무성하니 마치 지금도 그림자와 음향이 계신 듯해라.

 

어여차, 들보를 아래로 던져 보니,

산세가 다하자 큰 들판 이어지네.

대도는 원래 면전에 있으니,

높고 깊음은 필시 낮고 평평한 것에서 시작하는 법.

 

 

삼가 상량의 뒤에 묘우(사당)가 높고 안녕하니, 자성(종친)을 보우하시어 평소에 늘 모신 듯이 하기를 바라노라. 보추(步趨: 걸음걸이)에서 준승(법도)대로 밟아나가면 조상의 흠흠하시는 소리를 듣는 듯이 하리니, 언행에서 반드시 충과 경을 위주로 한다면 어느 것인들 효가 아니랴.

형체 없는 가운데서 조상의 모습을 보고 소리 없는 곳에서 조상의 소리를 듣는다면 접촉하는 곳마다 모두 하늘이리니, 들리지 않는 데서 조심하고 보이지 않는 데서 경계하라. 북해(北海)의 시서(詩書)와 학문이 이미 풍부하고, 낙동(洛東)의 도덕이 그 이웃이 되었도다. 뜰과 문가에서 주선하는 것을 벗어나지 말아서, 조상의 훈계를 무람하게 가벼이 여기지 말라.

이광정(李光靖),소산선생문집(小山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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