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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도잠서원 > 관찬사료

간략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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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위치 경북 영천시 대창면 영지길 399 (용호리)
건립연도 1612
문화재 지정 표기
제향인 조호익
기타 서원

관찬사료

◦ 『書院謄錄』, 禮曹, 景宗 3年, 6月 初10日, 上言道岑書院所屬靈芝寺勿侵事本道査問

 

경상도(慶尙道)의 유학(幼學) 심성규(沈聖奎) 등의 상언(上言)에 근거하여 예조(禮曹)에서 올린 계목(啓目)에, “문건은 점련(粘連)하였습니다. 이 상언을 보니, ‘저희들이 사는 곳은 바로 고(故) 참판(參判) 조호익(曺好益)의 상재(桑梓)가 있는 향리입니다. 사림(士林)들이 그곳에다 사당을 건립하여 조호익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오다가 선조(先朝)에 이르러 도잠서원(道岑書院)이라는 화려한 편액을 하사하였는데, 그때 영지사(靈芝寺)가 이 서원에 예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만력(萬曆) 경술년(庚戌年)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도리가 옛날과 같지 않은 바람에 불행하게도 근래 갑술년(甲戌年)부터 그 영지사를 좌병영(左兵營)에서 불법으로 점거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림들이 실망한 나머지 의정부(議政府)로 찾아가 하소연하니, 의정부에서 병영의 소행을 매우 이상하게 여긴 나머지 완문(完文)을 작성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침해하지 말고 영원히 서원에 예속시키도록 하였으나, 병영에서 승낙을 하지 않고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정부와 예조에서 그 이유를 두루 설명한 다음 다시는 침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엄하게 관문(關文)을 작성하여 발송한 횟수가 무려 다섯 번에 이르렀고, 도신(道臣)과 어사(御史)가 그에 대한 시비를 논열하여 엄중하게 공문을 작성하여 보낸 것도 도합 10여 통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전후로 병사(兵使)가 영원히 침해하지 않고 서원에 넘기겠다는 뜻으로 작성해 준 완문이 무려 10여 통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영에서 단단히 고집한 채 침탈하고 있으니, 특별히 예조로 하여금 전후로 의정부ㆍ예조ㆍ도신ㆍ어사ㆍ병사가 작성해 준 완문과 관문을 취하여 상고해 본 다음에 하나의 하찮은 영지사에 대한 환난을 막도록 해주심으로써 이 유림의 지역으로 하여금 황폐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천은(天恩)을 입었으면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영지사가 본래 서원에 예속된 것은 확실한 근거가 있으므로 다른 곳으로 이속(移屬)할 수 없습니다. 전후로 의정부ㆍ예조ㆍ감영(監營)ㆍ어사가 작성한 제사(題辭)와 병영에서 작성해 준 완문이 하나의 권축(卷軸)으로 이루어졌으니, 거듭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병영에서 한결같이 침해한다고 하니, 정말로 매우 해괴합니다. 본도(本道)에 물어서 그 곡절을 자세히 안 다음에 다시 품처(稟處)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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