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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진주시
의기사 - 義妓祠

의기사는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당시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했던 논개(論介)[?~1593]를 제향하는 사당이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그녀를 의기(義妓)라 칭하고, 강가에 사당을 세웠으며 뛰어내린 바위는 의기암이라 이름 붙였다. 1629년(인조 7) 진주 유림들이 의기암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전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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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문화재청 홈페이지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500-8
건립연도 1740
제향인 논개
문화재 지정 표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이칭 / 별칭
기타 사우

상세정보

의기사는 1593(선조 26) 임진왜란 당시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했던 논개(論介)[?~1593]를 제향하는 사당이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그녀를 의기(義妓)라 칭하고, 강가에 사당을 세웠으며 뛰어내린 바위는 의기암이라 이름 붙였다. 1629(인조 7) 진주 유림들이 의기암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전각하였다.

1721(경종 원년) 경상우병사 최진한과 1740(영조 16) 남덕하(南德夏)가 논개에 대한 포상을 조정에 건의하여 윤허를 받고 사당을 건립하였다. 1779(정조 3) 경상우병사 홍화보(洪和輔)가 사당을 수리하고, 그 전말을 사위였던 정약용에게 부탁하여 의기사기(義妓祠記)를 작성하였다. 1823(순조 23) 진주목사 홍백순(洪百淳)과 경상감사 이지연(李止淵)에 의해 재차 중건이 있었으며 1950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56년 진주 일대 기녀들이 의기창렬회를 조직, 시민의 성금으로 재건하였다. 1983720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사당 옆에는 의랑논개의비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편 의기사는 1868(고종 5) 진주목사 정현석(鄭顯奭)이 매년 6월 중 길일을 택하여 의암별제(義巖別祭)를 지낸 이래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제례는 모든 의식을 여성이 주관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2002년부터는 매년 5월 넷째주 금요일 진주시에서 주최하는 진주논개제(晋州論介祭)에서 거행하고 있다2021년 문화재지정번호가 폐지되면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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