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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표충사 > 현판·목판·비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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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표충사
명칭 표충사건사사적비(表忠祠建祠事蹟碑)
문화재 지정 표기
구분
형태사항 수량: 1
재질: 석재
위치
기타

상세정보


建祠事蹟碑銘」

昔我西山祖師當壬辰島夷之難與門人惟政處英等有勤 王克捷之??蒙 褒」

賞在 今上十二年戊申大芚釋天默戒洪?以?嶺南有泗溟書院而西山反配食」

焉西山以首倡之?尊師之位倒置若此 朝家褒表之及泗溟而不及西山者實百」

世之欠典乃走京師上言于 ?路事下籌司戶部尙書徐公有隣 啓曰臣按湖?」

時果有以此事呈?者臣以 啓聞體重不敢許而按?則實非誣也」

上仍 允可之以表忠 賜額 遣禮官致祭嗚呼顧此至重莫大之事實由徐尙書」

外談之力此以不記後生何考焉乃?石而命余銘之有不敢辭謹齋沐?手而銘曰」

昔我 先王陽九運當島夷陸梁火人廬室澤量骨血其禍慘烈 ?輿播?遠赴龍」

灣臣民?肝時我祖師倡建義旗蒸徒景?合力天兵克復西營 大駕還京勤事則」

祀?傳有矣其可以已爰有雲仍曰默與洪是事服膺遠奔 闕庭上達 天?事下」

朝廷重臣奏 聞幸得蒙 允事遂從順建祠海山 特遣禮官 賜祭奉安禪門此」

擧今古罕?孰不仰??惟盛勣非 徐公力何由而得原始要終立石紀?衆皆樂」

?塵飛滄海此碑不壞思公如在」

聖上十六年壬子午月 日」

西山六七法孫蓮潭有一謹撰」

應雲登旿謹書篆」

濟州牧使 李運彬 水伯 李恒林 本官 李運春 大施主 京城孔道興 金堤崔鼎申 化士 正?尹祐 隨從戒坦 院長 應雲登旿 ?? 月華詳照 退庵性? 都有司 雲潭定鎰 雪潭元裕 主管 德庵彩元 白蓮禱行 都僧統 嘉善禹鼎 嘉善察綻 典穀 通政罕訓 行有司 兼別尺攝天 錦仁」

住持 錦元 佐? 維郡燭善 前銜 弼察 察如 察堅 ?岑 老德 ?含 ?宗 采俊 順宅 弼照 ?元 迪訓 都監嘉善燭密 書記壯愚 支供瑞玉 來??信」

三綱 日官 平? 有欣 罕日 補主罕杉 本房 錦溪 璽卷 典閒 典平 養玉 表閑 禧奎 澹欣 冶匠趙應孫 石工永慧 刊?靜振」


건사사적비명(建祠事蹟碑銘)


옛날 우리 서산조사(西山祖師)께서 임진왜란을 당하여 문인(門人)인 유정(惟政)과 처영(處英) 등과 더불어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왜적을 물리친 공을 세워 여러 차례 포상(褒賞)을 받았다. 금상 12년 무신년(정조 12, 1788년)에 대둔사(大芚寺)의 승려 천묵(天?)과 계홍(戒洪) 등이, 영남(嶺南)에 있는 사명서원(泗溟書院)에서 서산대사를 도리어 배향(配享)하는데, 서산대사는 승병(僧兵)을 제일 먼저 주장하였고 존경받는 스승의 지위에 있는데 거꾸로 이와 같이 되어, 조가(朝家)에서 포상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 사명(泗溟)에게는 미치고 서산대사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은 백세의 흠전(欠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경사(京師)로 달려와 임금의 수레가 지나가는 길에서 상언(上言)하매, 이 일이 호부상서(戶部尙書) 서공(徐公) 유린(有隣)에게 맡겨졌다.

공이 상에게 아뢰기를, “신이 호남 지역에서 정사를 할 때 과연 이 일로 정장(呈狀)한 사람이 있어 계문(啓聞)하였습니다만, 사체(事體)가 중하여 감히 윤허하지 않으셨습니다. 장문(狀文)을 살펴본즉 거짓된 것이 없습니다.”하였다. 상이 이에 윤허하여 표충(表忠)이라고 사액(賜額)하고 예관(禮官)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아, 되돌아봄에 이 지극히 중하고 막대한 일은 실로 서 상서(徐尙書)가 밖에서 보호해준 덕택에 이루어질 수 있었으니, 이것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후생(後生)이 어찌 상고(詳考)할 수 있겠는가. 이에 귀한 돌을 마련하여 나에게 명(銘)을 쓸 것을 명하니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목욕재계하고 정성스레 손을 씻고 다음과 같이 명한다.


옛적 우리 선왕께서

양구(陽九)의 운(運)을 당하여

섬나라 오랑캐가 육지로 쳐들어와

인가에 불을 지르고

사람을 마구 죽이니

그 화가 참혹하였도다.

임금의 수레가 파천(播遷)하여

멀리 용만(龍灣)까지 달려가니

신민(臣民)이 간담을 쓸어내렸도다.

이때 우리 조사(祖師)께서

의로운 깃발을 드높이 내거니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모여들어

명나라 군사와 힘을 합해

서영(西營)을 회복하고

대가(大駕)가 서울로 돌아오니

왕에게 충성하고 사직을 구한 공이

조사에게 있었으니

그냥 둘 수 있겠는가

이에 운잉(雲仍 : 먼 후손을 가리킴) 가운데서

천묵과 계홍이 이 일을 잠시도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

멀리 서울까지 달려가 임금께 아뢰니

임금께서 조정에 내리시어

중신(重臣)이 갖추어서 아뢰매

다행히 윤허를 받게 되었도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해산(海山)에 사당이 세워짐에

특별히 예관을 파견하고

제사를 지내 주고 봉안하였으니

선문(禪門)의 일치고는

고금에 드문 일이로다

뉘라서 우러러보지 않으며

성대한 공을 생각지 않겠는가?

서공(徐公)의 힘이 없었다면

어찌 이룰 수 있었겠는가

처음을 돌아봐야 유종의 미를 거두리니

비석을 세워 기록하네.

중생 모두 즐겨 좇아

바다에 먼지가 날릴 때까지

이 비석은 무너지지 않으리니

공을 그리는 마음이 여기 있다네.


성상(聖上) 16년 임자년(정조 16, 1792년) 오월(午月 : 음력 5월) 일


서산(西山)의 6세 법손(法孫) 연담(蓮潭) 유일(有一)이 삼가 짓고 응운(應雲) 등오(登旿)가 삼가 쓰다.


음기(陰記)

제주 목사(濟州牧使) 이운빈(李運彬)

수백(水伯) 이항림(李恒林)

졸관(卒官) 이운춘(李雲春)

대시주(大施主) 경성(京城) 공도흥(孔道興), 김제(金堤) 최정신(崔鼎申)

화사(化士) 정파(正?) 윤우(尹祐), 수종(隨從) 계탄(戒坦)

원장(院長) 응운(應雲) 등오(登旿)

총섭(摠攝) 월화(月華) 상조(詳照), 퇴암(退庵) 성봉(性?)

도유사(都有司) 운담(雲潭) 정일(定鎰), 설담(雪潭) 원유(元裕)

주관(主管) 덕암(德庵) 채원(彩元), 백련(白蓮) 도행(禱行)

도승통(都僧統) 가선(嘉善) 우정(禹鼎), 가선(嘉善) 찰탄(察綻)

전곡(典穀) 통정(通政) 한훈(罕訓)

행유사(行有司) 겸별척(兼別尺) 섭천(攝天), 금인(錦仁)

주지(住持) 금원(錦元), 좌눌(佐?)

유군(維郡) 촉선(燭善)

전함(前銜) 필찰(弼察), 찰여(察如), 찰좌(察坐), 총잠(摠岑)

노덕(老德) 등함(等含), 등종(等宗), 채준(采俊), 순택(順宅), 필조(弼照), 즉원(卽元), 적훈(迪訓)

도감(都監) 가선(嘉善) 촉밀(燭密)

서기(書記) 장우(壯愚)

지공(支供) 서옥(瑞玉)

래왕(來往) 낙신(樂信), 일관(日官),

삼망(三網) 평훤(平?), 유흔(有欣), 한일(罕日)

보주(補主) 한삼(罕杉)

본방(本房) 금계(錦溪) 새권(璽卷), 전한(典閒), 전평(典平), 양옥(養玉), 표한(表閑), 희규(禧奎), 담흔(澹欣)

야장(冶匠) 조응손(趙應孫)

석공(石工) 영혜(永慧)

간원(刊員) 정진(靜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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