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_META_TITLE_ 휴관일입니다.


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표충사 > 현판·목판·비

기본정보

좌우로 스크롤하시면 전체 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표충사
명칭 표충사사적비(表忠祠事蹟碑)
문화재 지정 표기
구분
형태사항 수량: 1
재질: 석재
위치
기타

상세정보


表忠事蹟碑」

表忠世法也而學出世法者取以名其祠焉奚大其忠也大其忠則出世法不足以?也而其表之也固宜嶺南密州之靈鷲山有西山松雲騎虛三大師妥靈之所不寺而祠遵世法而」

報其功也 穆陵在宥之壬辰島夷傾國入寇八路剪焉傾覆于時西山捨緇而甲唱義討賊松雲繼帥義旅屢立奇勳旣又再入倭京以寸舌替?刃卒使狡酋?其跋扈刷還?倪前」

後不億騎?臨陣殉義不?如赴極樂界此皆忠之大而祠之所以設也松雲發跡於是山生而長而亂靖而歸就東麓縛數椽屋以爲棲息之地揭名白霞取其密邇先?使老蒼」

頭終生末生守之而師則雲遊國中諸勝而終後人因其菴作表忠祠官給春秋祭需及經丙子之亂守僧散而祠亦鞠爲茂草蕭?甲午金候昌錫慨然興想於數百年之前壯師之」

爲而惜其跡之湮沒就舊址復創祠具狀報?營按使趙公泰億啓聞于朝官?祭需如前大師入倭京時所奉願佛舊在大丘龍淵寺特建一殿於祠之左而奉安又創東西僧寮募」

僧居之於是鍾磬之聲不絶於晨昏而香烟之?娜者與杳靄嵐翠空?於南天居然爲方外之勝境矣山之北有師先?師俗姓任氏父守成贈刑曹判書兼知義禁府事祖贈左」

承旨曾祖 贈左通禮母徐氏以上幷有從贈三世敎旨皆藏祠中今上戊午春松雲法孫曰南鵬悼師之跡微而不章遍以告於搢紳諸公於是相國若金公若趙公若宋公咸」

以爲只給祭需非所以報功勵世遂啓前席特給復戶五結又命本道重修祠宇僧翠眼尙玄等實幹其事而南鵬?焉鵬又伐石慶山使僧楚玧董其役而乞文於余將以」

備載其事夫祠雖幷享三師而其初爲松雲作也故於松雲特詳云」

崇禎紀元後再壬戌十月 日立」

相位 領議政淸沙金公在魯 左議政藏密宋公寅明 右議政海村趙公顯命」

判位 吏曹判書 趙公尙絅 戶曹判書 尹公陽來 禮曹判書 尹公淳 兵曹判書 朴公文秀 刑曹判書 金公始炯 工曹判書 朴公師洙 漢城判尹 閔公應洙」

本道 觀察使 李公箕鎭 觀察使 趙公明謙 觀察使 鄭公益河 觀察使 沈公聖希 觀察使 金公尙星」

本府 府使任公守迪 府使尹公?敎 府使李公玄輔」

士林 生員孫碩寬 學生朴世矩 幼學李宜龍 學生申命胤 生員曺夏瑋 幼學成德周 幼學申應岳」

宗匠 淸運 若垣 雷震 杜惠 萬薰 定慧 宣定 秀眼 ?淨 宏活 璽封 日暎 海源 最栢」

有司 鶴林 禧有 信惠 淸印 明學」

禪匠 一宗 震機 朗聰 眞淨 快善」

行有司 惠文 廣惠 崔萬昌 金麗昌」

守禦 宋時聖 金昌? 姜後尙 丁就道 黃海澄 嚴世得」

禮曹 嚴漢鵬 高世瑜 文重郁」

本司 道內都摠攝海淑 北漢都摠攝性能 南漢都摠攝文旭 前摠攝翠眼 前僧統最日 海能」

本府 權漢章 金龍孫 金有享」

本營 中軍瑞胤 中軍垣梅」

本道前公員 贊和 能玉 世照 順基 時載文」

事判公員 前摠攝竺詮 義玄 垣珠」

僧孫 一行 快印 處澄 處華 秀玄 一還 崇遠」

本境內 慶州鎭 彩遠 義根 大邱鎭 順海 學輝 尙州鎭 寬機 性輝 最演 安東鎭 晋州鎭 哲雄 摠日 金海鎭 玄哲 淸眼 湖南僧統 楚文 星州鎭 宗益 錦日 善山鎭 太英 彦聰 東萊鎭 管晶 眞悟 漆谷鎭」

幹善 靈印 智性 覺信 貴悅 熙哲 根悟 一燁 雙洽 歸淑 旣澄 印遠 善印 孟洽 碩眼 信嚴 裕卞 萬善 碩岑 坐石 太性 朗伯 世弘 楚印 淸現 俊卞 快淑 日珠 碩天 湫? 曳運」

本院 僧統最心 和尙呂華 書記敏漢 海寬」

禪傳齋 圓俊 允言 致和 希性」

敎傳齋 尙玄 希律 順華 處俊 世弘 了岑」

神丹 金得海芳憲 姜淡沙里 徐戒昌 基主崔俊種 杜有元」

?? 歸允 國行 宏悅 管淸 吳漢伯 張瑞權 道淳 怡惠 世鵬 管海 漢楚」

浮石 碑石都監前摠攝楚玧 物財都監前僧統裕察 典供物財都監 處寬 行有司兼都書記善文 監役國坦 裕洽 鶴益」

典穀 演性 建祠 南鵬 有司 漢琦 宗正 大愚 主管演初書」

齋任」


표충사적비(表忠事蹟碑)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영남(嶺南) 밀주(密州) 영취산(靈鷲山) 표충사(表忠祠) 사적비(事蹟碑)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 겸 지경연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 성균관사 세자우빈객(吏曹判書兼知經筵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成均館事世子右賓客) 이덕수(李德守)는 비문(碑文)을 짓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 서명균(徐命均)은 글씨를 쓰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참의 지제교(吏曹參議知製敎) 조명교(曺命敎)는 전액(篆額)을 하다.


충성을 표창하는 것은 속세의 법이다. 속세의 법에 의해서 학문을 한 사람에게는 그 의미를 취해서 그의 사당에 명명(命名)을 하는 법이니, 어찌 그 충성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겠는가. 충성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속세의 법에서 나온 것이므로 거기에 얽매일 것은 없으나, 그의 충성을 표창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영남(嶺南) 밀양(密陽)의 영취산(靈鷲山)에 서산대사(西山大師),송운대사(松雲大師),기허대사(騎虛大師) 세 분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곳이 있는데, 절이라고 하지 않고 사당이라고 한 것은 속세의 법에 따라 그들의 공에 보답하려는 것이다.

선조(宣祖)께서 다스리시던 임진년(선조 25, 1592년)에 섬 오랑캐가 국력을 총동원하여 침입하니, 팔도가 결딴나고 뒤집혔다. 이때에 서산대사가 승복(僧服)을 벗어던지고 갑옷을 입고서 창의(唱義)하여 왜적(倭賊)을 토벌하였다. 송운대사가 이어서 의병(義兵)을 통솔하여 누차 훌륭한 공을 세웠으며, 이윽고 또 왜인(倭人)의 서울에 재차 들어가서 세치 혀로 무기를 대신하여 마침내 교활한 왜인의 두목으로 하여금 발호(跋扈)하지 못하게 하였고, 왜인에게 잡혀간 노인과 어린이를 데리고 돌아온 것은 전후로 셀 수 없이 많았다. 기허대사는 진지(陣地)에 나아가서 싸우다가 의리를 위하여 순국(殉國)하기를 마치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나아가는 것처럼 여겼을 뿐만이 아니었다. 이것은 모두 대단한 충성으로, 사당을 세우게 된 이유이다.

송운대사는 이 산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난리가 평정되자 돌아와서 동쪽 기슭에 두어 칸의 집을 지어 머무를 곳으로 삼고, 백하암(白霞菴)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이는 선영(先塋)과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아 늙은 어버이로 하여금 이곳에서 생을 마치고 여생(餘生)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사는 나라 안의 여러 명승지들을 떠돌며 유람하다가 생을 마쳤다. 후인(後人)이 그 암자가 있던 곳에 표충사를 짓고 고을에서 봄과 가을로 제수(祭需)를 지급하였으나, 병자호란(丙子胡亂)이 겪으면서 사당을 지키던 승려가 흩어지고 사당에도 무성한 풀이 자라게 되었다.

숙종(肅宗) 갑오년(숙종 40, 1714년)에 김창석(金昌錫)이 이를 유감으로 여기어 수백년 전 대사의 장한 행위에 대해 흥기(興起)하고 그 자취가 없어진 것을 애석하게 여기어 옛 터에 다시 사당을 지은 다음 행장(行狀)을 갖추어 순영(?營)에 보고하니, 안찰사(按察使) 조태억(趙泰億)이 조정에 아뢰어 고을에서 전처럼 제수를 지급하도록 하였다. 대사가 왜인의 서울로 들어갈 때 봉안(奉安)했던 원불(願佛)이 예전부터 대구(大丘)의 용연사(龍淵寺)에 있었으므로, 특별히 사당의 왼쪽에 전(殿)을 하나 지어서 봉안하였고, 또 동쪽과 서쪽에 승려의 요사채를 새로 지어서 승려를 모집하여 거처하게 하였다. 이에 종소리가 아침저녁으로 끊어지지 않았으며, 하늘하늘한 향불 연기는 그윽한 푸른 남기와 어우러져 남녘 하늘에 자욱하여 어느덧 불가(佛家)의 훌륭한 경계(境界)가 되었다.

산의 북쪽에 대사의 선영이 있다. 대사의 속성(俗姓)은 임씨(任氏)로, 아버지 임수성(任守成)은 형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刑曹判書兼知義禁府事)에 추증(追贈)되었고, 조부(祖父)는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으며, 증조(曾祖)는 좌통례(左通禮)에 추증되었으며, 어머니는 서씨(徐氏)이다. 이상에 대해서는 모두 3대를 추증하는 교지(敎旨)가 있으며, 모두 상당 안에 보관하고 있다.

지금 성상의 무오년(영조 14, 1738)) 봄에 송운대사의 법손(法孫) 남붕(南鵬)이 대사의 행적이 잊혀지고 드러나지 않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여러 벼슬아치들에게 두루 고하였다. 이에 상국(相國)과 김공(金公), 조공(趙公), 송공(宋公)이 감격하여 ‘제수만을 지급하는 것은 대사의 공에 보답하고 세상을 장려(?勵)하는 것이 아니다.’하고, 마침내 어전(御前)에서 아뢰어 특별히 복호(復戶) 5결(結)을 주고, 또 본도(本道)에 명하여 사우(祠宇)를 중수(重修)하도록 하였는데, 승려 취안(翠眼)과 상현(尙玄) 등이 그 일을 맡아 처리하였고 남붕이 총괄하였다. 남붕이 또 경산(慶山)에서 돌을 깎되 승려 초윤(楚玧)으로 하여금 그 일을 감독하게 하고, 나에게 비문(碑文)을 지어달라고 하여 그 사적(事跡)을 자세히 기재하려고 하였다. 사당은 세 분의 대사를 아울러 배향(配享)하였으나, 애당초에는 송운대사만을 위해서 지어진 사당이었기 때문에 송운대사에 대해서만 특별히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상위(相位)

영의정(領議政) 청사(淸沙) 김공재노(金公在魯), 좌의정(左議政) 장밀(藏密) 송공인명(宋公寅明), 우의정(右議政) 해촌(海村) 조공현명(趙公顯命)


판위(判位)

이조판서(吏曹判書) 조공상경(趙公尙絅), 호조판서(戶曹判書) 윤공양래(尹公陽來), 예조판서(禮曹判書) 윤공순(尹公淳), 병조판서(兵曹判書) 박공문수(朴公文秀), 형조판서(刑曹判書) 김공시형(金公始炯), 공조판서(工曹判書) 박공사수(朴公師洙), 한성판윤(漢城判尹) 민공응수(閔公應洙)


본도(本道)

관찰사(觀察使) 이공기진(李公箕鎭), 관찰사 조공명겸(趙公明謙), 관찰사 정공익하(鄭公益河), 관찰사 심공성희(沈公聖希), 관찰사 김공상성(金公尙星)


본부(本府)

부사(府使) 임공수적(任公守迪), 부사 윤공무교(尹公?敎), 부사 이공현보(李公玄輔)


사림(士林)

생원(生員) 손석관(孫碩寬), 학생(學生) 박세구(朴世矩), 유학(幼學) 이의룡(李宜龍), 학생 신명윤(申命胤), 생원 조하위(曺夏瑋), 유학 성덕주(成德周), 유학 신응악(申應岳)


종장(宗匠)

청운(淸運), 약원(若垣), 뇌진(雷震), 두혜(杜惠), 만훈(萬薰), 정혜(定慧), 선정(宣定), 수안(秀眼), 체정(?淨), 굉활(宏活), 새봉(璽封), 일영(日暎), 해원(海源), 최백(最栢)


유사(有司)

학림(鶴林), 희유(禧有), 신혜(信惠), 청인(淸印), 명학(明學)


선장(禪匠)

일종(一宗), 진기(震機), 낭총(朗聰), 진정(眞淨), 쾌선(快善)


행유사(行有司)

혜문(惠文), 광혜(廣惠), 최만창(崔萬昌), 김여창(金麗昌)


수어(守禦)

송시성(宋時聖), 김창린(金昌?), 강후상(姜後尙), 정취도(丁就道), 황해징(黃海澄), 엄세득(嚴世得)


예조(禮曹)

엄한붕(嚴漢鵬), 고세유(高世瑜), 문중욱(文重郁)


본사(本司)

도내 도총섭(道內都摠攝) 해숙(海淑), 북한 도총섭(北漢都摠攝) 성능(性能), 남한 도총섭(南漢都摠攝) 문욱(文旭), 전(前) 총섭(摠攝) 취안(翠眼), 전 승통(僧統) 최일(最日) · 해능(海能)


본부(本府)

권한장(權漢章), 김용손(金龍孫), 김유형(金有享)


본영(本營)

중군(中軍) 서윤(瑞胤), 중군 원매(垣梅)


본도(本道) 전(前) 공원(公員)

찬화(贊和), 능옥(能玉), 세조(世照), 순기(順基), 시재문(時載文)


사판 공원(事判公員)

전 총섭 축전(竺詮), 의현(義玄), 원주(垣珠)


승손(僧孫)

일행(一行), 쾌인(快印), 허징(處澄), 처화(處華), 수현(秀玄), 일환(一還), 숭원(崇遠)


본경내(本境內)

경주진(慶州鎭) 채원(彩遠) · 의근(義根), 대구진(大邱鎭) 순해(順海) · 학휘(學輝), 상주진(尙州鎭) 관기(寬機) · 성휘(性輝) · 최연(最演), 안동진(安東鎭), 진주진(晋州鎭) 철웅(哲雄) · 총일(摠日), 김해진(金海鎭) 현철(玄哲) · 청안(淸眼), 호남승통(湖南僧統) 초문(楚文), 성주진(星州鎭) 종익(宗益) · 금일(錦日), 선산진(善山鎭) 태영(太英) · 언총(彦聰), 동래진(東萊鎭) 관정(管晶) · 진오(眞悟), 칠곡진(漆谷鎭)


간선(幹善)

영인(靈印), 지성(智性), 각신(覺信), 귀열(貴悅), 희철(熙哲), 근오(根悟), 일엽(一燁), 쌍흡(雙洽), 귀숙(歸淑), 기징(旣澄), 인원(印遠), 선인(善印), 맹흡(孟洽), 석안(碩眼), 신엄(信嚴), 유변(裕卞), 만선(萬善), 석잠(碩岑), 좌석(坐石), 태성(太性), 낭백(朗伯), 세홍(世弘), 초인(楚印), 청현(淸現), 준변(俊卞), 쾌숙(快淑), 일주(日珠), 석천(碩天), 추안(湫?), 예운(曳運)


본원(本院)

승통(僧統) 최심(最心) · 화상(和尙) · 여화(呂華), 서기(書記) 민한(敏漢) · 해관(海寬), 선전재(禪傳齋) 원준(圓俊) · 윤언(允言) · 치화(致和) · 희성(希性), 교전재(敎傳齋) 상현(尙玄) · 희율(希律) · 순화(順華) · 처준(處俊) · 세홍(世弘) · 요금(了岑)


신단(神丹)

김득해(金得海), 방헌(芳憲), 강담사리(姜淡沙里), 서계창(徐戒昌), 기주(基主) 최준종(崔俊種), 두유원(杜有元)


기궐(??)

귀윤(歸允), 국행(國行), 굉열(宏悅), 관청(管淸), 오한백(吳漢伯), 장서권(張瑞權), 도순(道淳), 이혜(怡惠), 세붕(世鵬), 관해(管海), 한초(漢楚)


부석(浮石)

비석도감(碑石都監) 전 총섭 초윤(楚玧), 물재도감(物財都監) 전 승통 유찰(裕察), 전공물재도감(典供物財都監) 처관(處寬), 행 유사 겸 도서기(行有司兼都書記) 선문(善文), 감후(監後) 국원(國垣) · 유흡(裕洽) · 학익(鶴益), 전곡(典穀) 연성(演性), 건사(建祠) 남붕(南鵬), 유사(有司) 기(琦), 종정(宗正) 대우(大愚), 주관(主管) 연초서(演初書)


재임(齋任)

이미지

  • 등록된 이미지가 없습니다.
TOP
한국서원 제향인물 동아시아서원 서원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