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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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전남 나주시 미천서원길 14-22 (안창동) |
건립연도 | 1690 |
문화재 지정 표기 | |
제향인 | 허목, 채제공 |
기타 | 서원 |
◦ 『경종실록(景宗實錄)』, 4년(1724) 3월 27일 신축
임금이 비변사의 여러 재신(宰臣)을 인견하였는데, 우의정 이광좌(李光佐)가 경외(京外)의 옥송(獄訟)을 신칙하여 혹시라도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청하고, 또 이단장(李端章)이 유봉휘(柳鳳輝)를 무함하고 헐뜯었는데, 마땅히 유봉휘를 용서하여 기어코 출사(出仕)하도록 면려해야 한다고 말하니, 임금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조 참판 이진유(李眞儒)가 말하기를,
"성주(星州)·밀양(密陽)·충주(忠州)·여산(礪山) 등의 고을에서 금지령을 무릅쓰고 윤증(尹拯)의 서원을 세우자고 발의(發議)하여, 성주에서는 마치 조정 명령에 승부라도 걸듯이 서둘러 영건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도신(道臣)을 추고(推考)하고 지방관은 파직하며, 외방(外方) 서원에 획급(劃給)한 전결(田結)를 모두 환수하고 서원에서 점유하고 있는 양정(良丁)086) 은 모두 본고을에 귀속(歸屬)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진유가 또 송시열(宋時烈)·허목(許穆)의 서원이 중첩해 설립된 곳은 모두 철훼할 것을 청하였는데, 이광좌가 사액(賜額)만 환수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므로, 임금이 이광좌의 말을 따랐다. 교리(校理) 조지빈(趙趾彬)이 임금이 경연(經筵)에 자주 나갈 것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