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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낙봉서원 > 관찬사료

간략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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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위치 경북 구미시 해평면 낙성1길 84-7 (낙성리, 낙봉서원)
건립연도 1646
문화재 지정 표기
제향인 김숙자, 김취성, 박운, 김취문, 고응척
기타 서원

관찬사료

정조10년 10월 무진.
疏略曰。天方啓休明之運。必有出而任繼開之責者。絕學以之復紹。斯文賴而不墜。以臣等所聞。惟我 世宗朝司藝臣金叔滋是已。我東性理之學。實自文忠公鄭夢周發之。而夢周再傳而得叔滋。叔滋又再傳而得文敬公金宏弼。文正公趙光祖。此非臣等臆說也。文純公臣李滉。嘗答華使之問曰。鄭夢周傳之吉再。吉再傳之金叔滋。叔滋傳之其子宗直。宗直傳之金宏弼。宏弼傳之趙光祖。夫斯文統緖之所在。雖使也人言之。不敢以私好軒輊其間。況先正之言。炳若丹靑者乎。往在崇禎年間。士論齊發。創立洛峯書院於善山府。以祀叔滋。而以處士臣金就成。進士臣朴雲。副提學臣金就文。郡守臣高應陟配焉。蓋就成 就文兄弟。與雲同學於文穆公臣朴英。 英學於校理臣鄭鵬。鵬學於先正臣金宏弼。此皆源派之出自叔滋。而應陟則又私淑諸人。同得其傳。世所稱嶺南人才。多在一善者。誠以此也。夫叔滋當吾道湮晦之際。接賢師傳授之統。以之闡發鄭夢周之遺緖。成就金宏弼之正學。蔚然爲斯文宗盟。而聞風偈起。才俊輩出。有如幷享四臣者彬彬焉。羽翼師門矣。士林尊仰之誠。國家崇報之典。宜不在他人之後。而柌宇妥靈之地。尙闕恩額之宣。此所以群情抑菀。相率仰籲於天陛之下者也。伏乞亟降兪音。特宣院額焉。批以。疏辭下該曹稟處。

상소의 대략에,
“하늘이 바야흐로 아름답고 밝은 운運을 열려고 할 적에는 반드시 성현의 학문을 실천하고 후학을 인도하는 책임을 맡을 자가 나오니, 끊어진 학문이 이를 통하여 다시 이어지고 사문斯文이 의뢰하여 실추되지 않는 법입니다. 신들이 들은 바로는 우리 세종조의 사예司藝 김숙자가 바로 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 동방의 성리학은 실제로 문충공 정몽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정몽주가 거듭 전하여 김숙자를 얻었고, 김숙자가 또 거듭 전하여 문경공 김굉필, 문정공 조광조를 얻었으니, 이는 신들이 억측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순공 이황이 일찍이 중국 사신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정몽주가 길재에게 전하고, 길재가 김숙자에게 전하고, 김숙자가 그 아들 김종직에게 전하고, 김종직이 김굉필에게 전하고, 김굉필은 조광조에게 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사문의 계통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하더라도 감히 사사로이 좋아함으로써 올리고 내릴 수 없는데, 더구나 선정先正의 말이 단청丹靑처럼 분명한 데 있어서이겠습니까. 지난 숭정 연간에 사론士論이 일제히 일어나 선산부에 낙봉서원을 창립하여 김숙자를 제사 지내면서 처사 김취성, 진사 박운, 부제학 김취문, 군수 고응척을 배향하였습니다. 대개 김취성, 김취문 형제와 박운은 함께 문목공 박영에게 수학하였고, 박영은 교리 정붕에게 수학하였고, 정붕은 선정신 김굉필에게 수학하였으니, 이는 모두 김숙자에게 연원한 것이고, 고응척은 남에게 사숙私淑하여 함께 전수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일컫는바 영남의 인재가 대부분 일선에 있다는 것은 실로 이 때문입니다.
대저 김숙자는 오도吾道가 인멸湮滅될 즈음을 만나 어진 스승의 전수하는 계통을 이어서 이로써 정몽주의 유업遺業을 드러내 밝혔고, 김굉필의 정학正學을 성취하여 성대하게 사문의 종장宗匠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풍성風聲을 듣고 흥기하여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배출되었는데, 배향된 네 신하의 경우도 성대하게 사문을 보좌하였습니다. 사림이 존앙尊仰하는 정성과 국가가 숭보崇報하는 전례典禮를 의당 다른 사람보다 뒤에 두어서는 안 될 터인데, 영령을 모신 사우에 아직까지도 편액을 하사받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억울하게 여겨져 서로 이끌고 와서 대궐 아래에서 우러러 호소하는 까닭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속히 유음兪音을 내리셔서 특별히 서원의 편액을 하사해 주소서.”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상소를 해조該曹에 내려 품처稟處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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