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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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 덕천서원 |
명칭 | 『澗松集』 |
문화재 지정 표기 | |
저 자 | 趙任道 |
소장정보 |
◦ 『澗松集』, 趙任道, 권1, 詩, 五言律詩, 「尋德川書院 辛亥春」
덕천서원을 찾아가다 신해년(1611, 광해군3) 봄
남쪽 고을에 두 징사가 있었으니 / 南州兩徵士
남명과 수우당이라네 / 山海與愚堂
세상을 피해 비록 근심 없이 살았지만 / 遯世雖無悶
시대를 걱정하며 역시 잊지 못했다네 / 憂時亦不忘
염완입나의 풍모는 아득하고 / 廉頑風緬邈
격탁양청의 도는 깊고도 머네 / 激濁道深長
고상함은 유학을 부지하였으니 / 高尙扶名敎
어찌 굳이 임금을 섬길 필요가 있었으랴 / 何須事帝王
◦ 『澗松集』, 趙任道, 권3, 書, 「答林樂翁」
頃見兄書。欲得拙稿。而但有一件兒子難於遠出。茲不得全稿送呈。令甥姪輩寫出言志若干首送去。此非前日風雲月露之比。兄於病裏無聊中時或披覽。以代百里外顏面。則雖未得親見。猶可寬懷於未就木前也。德川存念之敎。此院爲士友陷身之所。雖有智者。末如之何矣。兄何以此載禍相餉之事。及於半死老物乎。老物有何氣力而念及於此也。雖然。僕之於南冥。尊慕不淺。方修南冥粹言一卷書。其中所去取者亦多。去者。解關西問答一篇。與子強,子精一札。策問題一道也。添入者。退溪三書,頭遊錄跋,花潭四韻,龜巖先世墓碑也。此業若畢則當以取質。生前相遇。已不可得。只待泉下相尋而已。信筆及此。不覺哽塞。
附林谷書
…爲斯文更加頤養。使後學永有矜式如何。德川不幸。値有一番紛挐。迄爲無主之地。幷惟存念斯文事。責在斯文。非兄之長慮却顧處耶。昏眩比甚。放筆草草。
근자에 형의 편지를 보니 저의 원고를 보고자 하셨던데, 단지 한 부 밖에 없고 아들에게 멀리 보내기 어려워 이에 원고 전부를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생질들에게 시 몇 수를 베끼게 하여 보내니, 이것은 전날 음풍농월한 것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형께서 병중에 무료할 때 간혹 읽어보아 백 리 밖에 있는 저를 만나는 것을 대신한다면 비록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시름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덕천서원(德川書院)을 염두에 두라는 말씀이 있으셨는데, 이 서원은 사우들이 법을 범하는 곳이 되었으니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 있어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형께서는 어찌하여 이 재앙을 덧붙여 보내는 일을 거의 죽게 된 늙은이에게 이르게 하십니까. 늙은이가 무슨 기력이 있어 생각이 이것에 미치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저는 남명(南冥) 선생을 존숭하고 앙모하는 것이 얕지 않아 지금 《남명수언(南冥粹言)》 한 권을 편찬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빼거나 추가할 것 또한 많으니, 뺄 것은 〈해관서문답(解關西問答)〉 한 편과 〈자강(子强)ㆍ자정(子精)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 〈책문제(策問題)〉 한 편입니다. 추가할 것은 퇴계(退溪)가 보낸 편지 세 통, 〈두류록발(頭流錄跋)〉, 서화담의 칠언율시, 구암(龜巖)의 선대 묘비입니다. 이 일이 끝나면 당연히 자문을 받겠습니다. 생전에 서로 만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니 단지 지하에서 찾기를 기다릴 따름입니다. 붓 가는 대로 써서 이에 이르렀는데 저도 모르게 슬퍼 목이 멥니다.
임곡의 편지를 붙임 [임진부(林眞怤)]
…우리 유학을 위해 더욱 수양하여 후학들이 영원히 존경하고 본받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덕천서원이 불행하여 한차례 분란을 겪고 나서 주인 없는 곳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울러 생각건대, 사문을 생각하는 일은 책임이 사문에 있으니, 형이 멀리 생각하고 뒤돌아 볼 곳이 아니겠습니까. 심히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가물거려 붓 가는대로 써서 경솔합니다.
◦ 『澗松集』, 趙任道, 續集권3, 書, 「與朴伯和 絪○三」
且聞德川通文來到兩書院。期以今秋從享覺齋云。然耶。院中諸論。兄必與聞。凡百消息。一一示及如何。
또 듣자하니 덕천서원(德川書院)의 통문이 두 서원에 도착하여, 금년 가을에 각재(覺齋)를 종향할 계획이 있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서원 내의 여러 논의는 형께서 꼭 그 일에 참여하여 사정을 들었을 것이니, 온갖 소식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