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좌우로 스크롤하시면 전체 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관서원 | 덕천서원 |
명칭 | 『台溪集』 |
문화재 지정 표기 | |
저 자 | 河溍 |
소장정보 |
◦ 『台溪集』, 河溍, 부록 권1, 年譜, 「台溪先生年譜」
皇明神宗萬曆三十七年 光海君元年 己酉 先生十三歲。 從寧無成河公 應圖 受庸學。河公。是先生先祖木翁公之弟。正郞公啓宗之後。而文貞公南冥曺先生門人也。時居德川洞。先生往學焉。申伊溪價以書賀河公曰。聞河秀才近得親灸於門。兄得英才而敎育之。 秋。歸自德川洞。仍讀庸學。寧無成公與先生書曰。近聞着工於庸學而曉達誠敬之義。深慰。願一來以敍別懷。兼論蘊奧之旨。
황명신종만력37년 광해군 원년 기유 선생 13세. 영무성 하공[응도]에게 『중용』, 『대학』을 배우다. 하공은 선생의 선조 목옹공의 아우 정랑공 계종의 후예이고 문정공 남명 조 선생의 문인이다. 당시에 덕천동에 살았는데 선생이 가서 배우니, 이계(伊溪) 신가(申價)가 편지로 하공에게 하례하기를, “듣건대 하 수재가 근래에 형의 문하에서 친히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니, 형이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구려!”라고 하였다.
가을에 덕천동에서 돌아와 계속 『중용』과 『대학』을 읽다. 영무성공이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근간에 듣자니, 『중용』과 『대학』을 공부하여 성(誠)과 경(敬)의 뜻을 깨우쳤다고 하니 깊이 위로가 된다. 한 번 와서 그간 작별한 동안의 심회를 펼치고 겸하여 『중용』과 『대학』의 깊은 뜻을 논하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四十一年癸丑 先生十七歲 夏。同河謙齋 弘度 入德川書院。校正南冥先生文集 先生與謙齋居常追隨。以道義相推重。講磨論確甚多。
만력41년 계축 선생 17세 여름에 하겸재[하홍도]와 함께 덕천서원에 들어가 『남명선생문집』을 교정하다. 선생이 겸재와 항상 어울려 사귀면서 도의로써 서로 추중하여 강론한 것이 매우 많았다.
四十四年丙辰 先生二十歲。 二月。與河謙齋,李漁隱 時馩,李而發 培根 肄業于德川。
만력 44년 병진 선생 20세. 2월에 하겸재, 이어은[시분], 이이발[배근]과 함께 덕천서원에서 학업을 익히다.
四十六年戊午 先生二十二歲。 與河謙齋遊德川書院。仍入德山寺讀書。
만력 46년 무오 선생 22세. 하겸재와 함께 덕천서원에서 노닐고, 이어서 덕산사에 들어가 글을 읽다.
四十八年庚申 先生二十四歲。 與趙鳳岡 㻩,李梅堂 城 及季弟溭。肄業于浮査成公 汝信 溪亭。… 夏。與河謙齋,鄭秋潭 頠 會于德川。
만력 48년 경신 선생 24세. 조봉강[겸], 이매당[성], 막내 아우 직과 함께 부사 성공[여신]의 계정에서 학업을 익히다. … 여름에 하겸재, 정추담[위]과 함께 덕천서원에서 모이다.
毅宗崇禎四年辛未 先生三十五歲。 夏。與趙監司 希逸,朴無悶 絪,許滄洲會德川。商議院事。
의종숭정4년 신미 선생 35세. 여름에 조감사[희일], 박무민[인], 허창주와 함께 덕천서원에서 모여 서원의 일을 의논하다.
孝宗大王元年 庚寅 先生五十四歲。… 八月。與河謙齋入德川書院。修正儒籍。儒籍者。錄當時及門諸賢及後生之私淑艾者也。至是先生與謙齋修正編輯。藏之院中。
효종대왕 1년 경인년[1650] 선생 54세. … 8월 하겸재와 함께 덕천서원에 들어가 유적을 수정하다. 유적은 남명 선생 당시에 문하에 이른 제현과 후생 가운데 사숙한 사람을 기록한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선생이 겸재와 함께 수정하고 편집하여 서원에 보관하였다.
丁酉 先生六十一歲。… 二月。再疏辭。◑入德川書院。釐正南冥先生文集。時先生屛處林園。身任斯文之責。林林谷書有曰。座右必不欲便訣堯舜。而病莫能強。則朝端雖失。鄕黨得矣。南冥集事。博謀士林。講究義理。豈不光明正大也。河謙齋書有曰。釐正事甚善。僕身病如右。豈敢措一辭。惟左右善爲指揮。卒成大事。
정유년[1657, 효종 8] 선생 61세. 2월 다시 사직소를 올리다. 덕천서원에 들어가 『남명선생문집』을 정리하다. 당시에 선생이 산림에 물러나 지내면서 몸소 사문의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임임곡[임진부]의 편지에 “그대가 반드시 요순 같은 성군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병으로 능히 힘을 쓸 수 없으니, 조정에는 비록 잃음이 있으나 향당에는 얻음이 있습니다. 『남명집』에 관한 일은 사림에 널리 도모하여 의리를 강구하니 어찌 광명정대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고, 하겸재의 편지에 “정리하는 일은 매우 좋으나 제가 신병이 이와 같으니 어찌 감히 그 사이에 한마디 말을 하겠습니까? 그대가 잘 지휘하여 마침내 대사를 이루기 바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 『台溪集』, 河溍, 부록 권2, 行狀, 「有明朝鮮國通訓大夫行司憲府執義台溪先生行狀[河弘度]」
公諱溍。字晉伯。自號台溪。姓河氏。… 十四歲。入德川書院。受業於鄕賢河綾城應圖。好賢樂善。而最愛公之忠信焉。
공의 휘는 진, 자는 진백, 자호는 태계, 성은 하씨이니 … 14세에 덕천서원에 들어가 향현 하 능성 응도에게 배웠으니, 능성공이 현인을 좋아하고 선을 즐거워하되 공의 충신함을 가장 사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