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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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 영천서원 |
명칭 | 『燃藜室記述』 |
문화재 지정 표기 | |
저 자 | 李肯翊 |
소장정보 |
李肯翊, 燃藜室記述(卷之九 > 中宗朝故事本末)
삼흉(三凶)이 일을 꾸미다가 정유년에 패사하다
○ 정환(丁煥)은 자는 용회(用晦)이며, 호는 회산(檜山)이요,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정황(丁熿)의 형으로 효도와 우애와 문학과 정직하기로 이름이 있었다. 병자년에 진사가 되고 무자년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경상 도사(慶尙道事)에 이르렀다. 악한 것을 미워하기를 원수같이 하여, 어느 날 음탕하고 더러운 자가 여러 사람에 섞여 한 좌석에 참여하였는데, 간 뒤에 곧 앉았던 자리를 걷어다가 불살라 버렸다. 안로가 권력을 잡을 때 정환은 생원으로 있었는데, 길에서 대관(臺官)을 만나 면박해 꾸짖기를, “너희들은 대관(大官)은 탄핵하지 않고 길 가는 사람이 말을 비키지 않았다고 다스리려 하느냐.” 하니 안로가 이 말을 듣고 길이 원망을 품음으로 인하여 불우하게 지내다가 나이 44세에 죽었다. 남원 영천서원(寧川書院)에 향사되었는데 숙종조에 사액하였다. 《조야첨재》에 죽었다고 기록하였다.
李肯翊, 燃藜室記述(別集 卷之四 > 祀典典故)
서원(書院)
영천서원(寧川書院) 만력 무오년에 세웠고 사액하였다. : 안처순(安處順) 호는 사재당(思齋堂), 판관을 지냈다. ㆍ정환(丁煥) 호는 회산(檜山), 벼슬은 도사이다. ㆍ정황(丁熿) 을사록(乙巳錄)에 들어 있다. ㆍ이대유(李大㕀) 호는 활계(活溪), 좌랑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