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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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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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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역동서원
명칭 『溪巖日錄』
문화재 지정 표기
저 자 金坽
소장정보

상세정보

◦ 『溪巖日錄, 金坽, 1

(五月)六日

食後赴易院以晦齋辨明事列邑差出陪疏余亦在其中而病免之夕還家以明日宗家時祀徃宿後凋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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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밥을 먹은 뒤 역동서원易東書院으로 갔다. 회재晦齋를 발명發明하는 일 때문에 여러 읍에서 배소陪疏를 차출했는데 나도 그 중에 있었지만 병으로 제외되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종가의 시사時祀 때문에 후조당에 가서 잤다.

 

(十一月)三日

朴守謙蔡衎輩理月川遺稿于易院院長亦許之於事如何

박수겸朴守謙채간蔡衎 등이 역동서원易東書院에서 월천月川의 유고遺稿를 정리한다고 하니 원장도 허락했다고 하는데, 일이 어떻겠는가?

 

(十一月)二十八日

月川遺稿初編于易院以外議移來龍壽寺金中淸李苙來徃如常人任兄言彼等方在罪網中公然會集

駭愕

월천의 유고遺稿는 처음에 역동서원에서 편집하였는데, 바깥의 의론 때문에 용수사龍壽寺로 옮겼다. 김중청과 이립李苙이 일반 사람처럼 왕래한다고 한다. 임 형이, “저들이 바야흐로 죄망罪網에 걸려 있으면서 버젓이 모여드니, 아주 해괴하고 경악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 『溪巖日錄, 金坽, 2, (七月)十八日

雨未已監司權盼牒各邑校生讀小學俟巡課之校生皆懼不通院長琴公令有司徐君出文聚儒名以通讀小學會者三十人金獻納澤龍琴金山愷皆徃指授句讀院長欲與諸生講學而讀是書則異時當從容相議今以監司關節校生考講於書院萬不相近而濫聚雜收徒費院餼不知院長何爲而爲此也校生托名校籍考講通否自當其責若欲課學應講之書則各自私聚各自私學可也書院豈爲監司考講而設也藉是而名爲群居無故椎牛一過爲二徃年設東床禮於陶院今又如是於易院院中爲喫啖所吾先生有知當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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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멈추지 않는다. 감사 권반權盼이 각 읍에 첩문牒文을 내려 교생校生소학小學을 읽고, 내가 순시하면서 시험을 칠 것이니 대기하라.”고 하였다. 교생들이 모두 불통不通을 두려워하였다. 역동서원의 금 원장琴院長은 유사 서군을 시켜서 통문을 내어, ‘통독소학通讀小學이라는 명목으로 선비들을 모으게 하였는데, 모인 사람이 서른 명이었다. 헌납獻納 김택룡金龍澤과 김산金山 금개琴愷가 가서 구두句讀를 지도하였고, 원장도 교생들과 함께 강학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것은 다른 때에 조용히 서로 의논할 일이요, 지금 감사의 요구 때문에 서원에서 교생의 고강考講을 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함부로 모이면 한갓 서원의 음식만 축낼 뿐이니, 원장이 왜 이렇게 하려고 하는지를 모르겠다. 교생이 교적校籍에 이름을 올렸으면, 고강의 통불통은 저절로 마땅히 자기의 책임이다. 만약 응강應講할 책을 익히고자 한다면 각자가 사사로이 모여서 각자가 사사로이 공부하는 것이 옳다. 서원이 어찌 감사의 고강을 위하여 설치되었겠는가? 이 일을 핑계로 무리를 지어서 아무런 까닭도 없이 소까지 잡아먹었으니, 한 가지 허물을 두 가지로 만들었다. 왕년에 도산서원에서 동상례東床禮를 베풀었고, 지금 또 역동서원에서 이렇게 하여 서원이 먹고 마시는 곳이 되었으니, 우리 퇴계 선생이 안다면 모름지기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 『溪巖日錄, 金坽, 3

(正月)四日

午後徃陶院會者已三十人易院之傍瘟疫熾明日謁廟只行於陶不行於易矣

흐림. 오후에 도산서원에 갔더니 모인 사람이 이미 서른 명이나 되었다. 역동서원 옆에는 전염병[瘟疫]이 한창 번져 내일 사당 참배는 도산서원에서만 하고 역동서원에서는 하지 않기로 했다.

 

(四月)十四日

朝修易東文書傳于寧越丈民食匱乏無不同然院穀乞糶者上下雲集院門如市歲凶至此可謂變故矣院長疲於分給

맑음. 아침에 역동서원의 문서를 작성하여 영월 어른에게 전달했다. 백성들의 양식이 떨어졌는데, 그렇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서원의 곡식을 방출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위아래 할 것 없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서원 문전은 시장바닥 같았다. 흉년이 이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변고라 할 만하다. 원장은 곡식 나누어 주기에 피곤해 했다.

 

(八月)二十八日

曉行時祀于先廟食後赴易院德輿而實同行至鼻岩共登岩上有客過騶率甚衆前後擁衛呵道之聲震乎山野揚揚自得乃吳益熀也可笑可笑至易院院長及琴驪州致遠一之德玉以志任甫諸君又儒生若干人在座孫祐琴大雅輩旣被一道士林之罰公然赴擧且欲呈疏聞者駭憤此輩院籍削名事院長發論腰下年少諸君皆推條而齋有司李惠迪畏㥘至甚可笑可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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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새벽에 선친 가묘에 시사를 지냈다. 밥을 먹은 뒤 역동서원에 갔다. 덕여와 이실이 함께 갔다. 비암鼻岩에 이르러 함께 바위 위에 올라갔더니 지나가는 길손이 있었다. 구종驅從들이 매우 많고 앞뒤로 호위하며 갈도喝道 소리가 산과 들을 진동하고 득의양양해 했는데, 곧 오익황吳益熀이었다. 우습고 우스웠다.

역동서원에 이르니 원장 및 금 여주, 치원일지덕옥이지임보 등 여러 사람들과 또 유생 몇 명이 자리해 있었다. 손우孫祐와 금대아琴大雅 무리가 이미 온 도내 사림의 벌을 받고도 버젓이 과거에 응시하고 게다가 상소를 올리려 한다고 하니, 이를 들은 자들이 해괴하게 여기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무리를 서원 명부에서 삭제한 일은 원장이 의논을 꺼냈는데, 허리춤에 오는 젊은 애들도 모두 조목대로 추궁하자, 재유사齋有司 이혜적李惠迪이 매우 겁을 집어먹게 되었으니 우습고도 애처로웠다.

 

(九月)十五日

聞以易院孫祐輩削名事草頭怨我可笑

듣자하니, 역동서원에서 손우孫祐 무리를 제명한 일 때문에 초두草頭가 나를 원망한다고 하니 우습다.

 

◦ 『溪巖日錄, 金坽, 4

(二月)二十七日

晨起行外祖妣忌祭昏黑汝熙而實元善與光鉄及碏至盖二生自易院祭所回也聞孫輩呈單陶院擧吾門中滿紙辞說皆是誣餙極口罵辱乃云某某等蹲坐山上指揮奴屬以絰帶結縛渠身裂破頭巾無數乱打且有夷狄蠻貊所不爲等語光鐵謄來看來痛惋亦爲可笑此非渠之所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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