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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임천서원 > 문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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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임천서원
명칭 『響山集』
문화재 지정 표기
저 자 李晩燾
소장정보

상세정보

◦ 『響山集, 李晩燾, 6, , 寄中業 戊申

중업에게 부침 무신년(1908, 융희2)

臨川事前之可信者旣虛則後之僥倖其可必乎吾之所處與昔湖上有實職不同辭職䟽自古有之辭資疏曾所未見也此一難也搢紳章甫合䟽䟽首當以伏閤人則在外人分所不敢此二難也今日辭資明日爲䟽首凟撓已甚沒廉亦甚人謂余何人哉此三難也凡事當以誠心况奏御文字乎在私分有此不安不愜而冒沒爲之尙可望其孚格乎吾之無似見譏一世不足恤而斯文大事因言者之非其人而致累則其爲不安又何如也

임천서원(臨川書院)에 관한 일은 전에 믿을 만한 것이 이미 허사가 되어 버렸으니, 뒤의 요행을 어찌 기필할 수 있겠는가. 내가 처한 바는 옛적 호상(湖上)이 실직을 띤 것과 같지 않다. 사직소(辭職疏)는 예부터 있었지만 사자소(辭資疏)는 일찍이 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첫 번째 곤란함이다. 벼슬아치와 선비들이 합동으로 소장을 올릴 때에 소두(疏頭)는 마땅히 복합(伏閤)한 사람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보면 재야의 사람이 분수상 감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것이 두 번째 곤란함이다. 오늘 자품을 사양하고 내일 소두가 되는 것은 소란을 피움이 너무 심하고 염치가 없음이 또한 심하니,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하겠느냐. 이것이 세 번째 곤란함이다. 모든 일을 성심으로 해야 하는데 더구나 임금에게 아뢰는 문자에 있어서이겠느냐. 나의 분수로 헤아려 볼 때 편안하지 않고 유쾌하지 않은데 무릅쓰고 하더라도 오히려 감동시키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 변변찮은 내가 한 세상에 비난을 받는 것은 아랑곳할 것이 없으나 사문(斯文)의 큰일이 말하는 자가 적임자가 아님으로 인해 누를 끼친다면 불안한 심정이 또 어떻겠느냐.

 

◦ 『響山集, 李晩燾, 13, 墓碣銘, 成均進士金公墓碣銘 幷序

公諱鎭明字文若。… 以臨川請額事更入都門其後渾被腰膂之厄痛之獨深常深居簡出至於勸課村秀不少倦每令尋孝弟忠信爲何事也

성균 진사 김공 묘갈명 병서

공의 휘는 진명(鎭明), 자는 문약(文若)이다. 임천서원(臨川書院)의 사액을 청하는 일로 번갈아 도성에 들어갔는데, 그 후 요려(腰膂)의 화를 크게 당하게 되자 공은 그 슬픔이 누구보다 컸기 때문에 항상 집안 깊숙이 숨어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을의 수재(秀才)들을 가르치는 일은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언제나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이 어떤 일인지를 찾아보도록 하였다.

 

◦ 『響山集, 李晩燾, 16, 行狀, 通訓大夫行世子侍講院弼善贈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松西先生姜府君行狀

庚寅赴泗濱講會發臨川書院復設之論。…

통훈대부 행 세자시강원 필선 증 통정대부 홍문관부제학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송서 선생 강 부군의 행장

경인년(1830, 순조30)에 사빈서원(泗濱書院)의 강회에 가서 임천서원(臨川書院)을 다시 세우자고 발의(發議)하였다.

 

◦ 『響山集, 李晩燾, 19, 行狀, 季父通仕郞行繕工監假監役癡翁府君行錄

臨川入享之會公在末席叱退三灘之儒。…

임천서원(臨川書院)에 입향(入享)하는 모임에서 공이 말석에 있다가 삼탄(三灘)의 유생을 꾸짖어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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