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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of Seown (書院:private academy)
In East Asia and Glocalism

미천서원 > 문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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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서원 위치 건립연도 제향인 기타 안내표
연관서원 미천서원
명칭 『순암집(醇庵集)』
문화재 지정 표기
저 자 안정복(安鼎福)
소장정보

상세정보

안정복(安鼎福), 순암집(醇庵集), 9 - - 미천서원(眉泉書院)의 생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다.

4, 5년 이래로 여러 차례 편지의 문안을 받았고 죽순까지 보내 주셨으므로 후한 뜻에 감격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이 외진 관계로 인편이 없어서 한 번도 사례의 답장을 쓰지 못하였으므로 무례한 잘못을 자책(自責)해 마지않고 있습니다. 삼가 쾌청하고 온화한 시절에 여러분들의 건강이 좋으시리라고 사료됩니다. 정복(鼎福)은 본디 중병(重病)을 앓고 남은 목숨이 나이 팔순(八旬)에 가까워지자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이 더욱더 흐리멍덩해지고 있으므로 오직 세상을 떠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람되게도 미천서원의 부원장(副院長)의 임무를 맡아 이제 6년이나 되었는데도 여러 군자들과 학문을 강론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므로 항상 아쉬어 탄식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서원을 건립하는 것은 어진 이를 존중하고 그 도()를 강론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진 이가 존중되지 않으면 도가 존중되지 않고 학문을 강론하지 않으면 도가 밝혀지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경내나 이웃 고을이나 도()에 연세와 덕이 높고 문학이 있는 사람을 추대하여 원장(院長)과 부원장(副院長)으로 모셔 놓고 표준을 삼아 법받도록 하는 것이니, 그 뜻이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멀리 서울에 있으면서 그 책임을 맡은 일은 없었습니다. 제가 비록 그런 줄을 알고 있었으나 연전에 외람되게 그 책임을 맡았던 것은 사소한 곡절이 있어 조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은 나의 이름이 서원의 문적에 오른 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서원에 무슨 일이 있는지, 여러분들이 어떤 글을 강론하는지도 모르는 채 하나의 우상이 되어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으니, 이는 고인(古人)이 부끄러워하던 바입니다. 더구나 지금 서산(西山)이 가까워져 죽음이 조석간에 달려 있는데이겠습니까. 귀소(貴所)에서 보내온 원안(院案)에 적힌 저의 이름을 삭제하고 삼가 봉하여 보내드리오니, 다시 원장께 여쭈어 다른 사람으로 정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는 충심에서 나온 말이오니, 여러분들께서는 굽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여쭈어 볼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국가가 백성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루는 도리와 선비들이 학문을 강론하여 도를 밝히는 업은 오로지 글을 읽는 데에 있습니다. 제가 평소 일찍이 일부의 당조약(當條約)을 제정하여 향리(鄕里)의 자제들과 실행하였는데, 이는 모두 옛날 현인(賢人)이 만든 가르침이었습니다. 저의 고루함을 잊고 삭제할 것은 삭제하여 하나의 책자를 만들어 올림으로써 여러 해 동안 임무를 유기한 허물을 속죄하려고 하오니, 버리지 않으신다면 나의 영광과 감격이 클 것이고 또한 덕업(德業)을 닦고 진취하는 데도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뜻은 어떠합니까? 매우 죄송합니다. 천 리 밖에서 편지를 쓰다 보니 암담한 생각만 간절합니다. 나머지는 여러분들께서 더욱 대업(大業)에 힘써 저의 구구한 바람을 위로해 주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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